오피니언 에디터칼럼

여당 실종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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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선주자 지지율로 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한나라당 주자 세 명의 지지율을 합치면 76.4%나 되고 원희룡 의원의 몫까지 더하면 조금 더 높아진다. 한나라당 주자들이 2900만 명이 넘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주자 두 명의 지지율 합계가 5.2%로 200만 명에도 못 미친다.

이번 조사는 대선 여론조사 사상 최대 규모인 1만 명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했다. 각 시.도별로 인구 분포를 감안해 고르게 답변을 구했다. 오차 범위는 1% 이내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여권은 속수무책이다. 우선 네거티브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조차 '불능화'할 가능성이 있다. 한나라당 주자들은 1~3위를 석권 중이다. 제2의 김대업이 나타나서 1위 후보를 거꾸러트린들 그 수혜자는 다른 한나라당 주자이다. 여권이 복음(福音)처럼 외고 있는 대통합이 기사회생의 묘책이 될지도 불투명하다. 중앙일보 여론조사는 열린우리당과 탈당파, 민주당이 합쳐서 새로운 범여권 정당을 만들 경우 15.6%의 지지를 받는다고 집계했다. 이래서는 흥행에 실패한다. '전국 순회 국민경선'도 마이너 리그로 전락한다. 주변 인사들이 통합에 참여하기보다는 메이저 리그를 벌이는 한나라당에 투항하는 생존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변수가 있다. 여권의 희망대로 막판 단일화를 통한 플러스 알파(+α), 즉 '드라마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정세를 보면 갈등과 분열을 거쳐 막판에 단일화 드라마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는 쪽은 거꾸로 한나라당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나라당의 3각경쟁이 열린우리당의 단일화(그것도 따지고 보면 재탕이지만)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낮을 이유가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일 한나라당 주자들이 치열하게 싸우면서 분열했는데도 지지율에 큰 변동이 없으면 열린우리당엔 그 자체가 재앙이다. 대선에서 패할 뿐만 아니라 그 넉 달 후 치러질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에 뿌리를 둔 정치세력이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4.19 직후 제5대 총선에서 과거의 집권 자유당이 소멸하고, 야당이던 민주당이 전체 233석 가운데 175석(75%)을 얻어 신파와 구파로 갈라진 사례도 있다. 열린우리당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총선 한 번 치르고 거대정당이 됐던 것을 떠올리면 다음 총선에서 홀연히 사라진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열린우리당은 고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옳은 처방이 나온다. 통합이 진정한 해법이려면 몰락의 원인이 분열이어야 하는데 지금의 분열은 민심이 떠난 결과 벌어지는 현상이지 근본 원인은 아니다.

졸지에 황폐한 무주공산(無主空山) 신세가 됐지만 원래 열린우리당의 바탕은 옥토(沃土)다.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1200만 표, 17대 총선 152석 압승이 여기서 나왔다. 열린우리당은 나침반도 없이 환상을 좇아 유령선처럼 헤매기보다 정체성을 되찾고 옛 지지층의 이탈 원인과 그들의 불만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서 "이 길로 가야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행복해진다"고 호소해야 한다. 아마 그 방향은 건강한 진보일 것이다. 이와 함께 '역전의 한 방' 운운하며 허풍 떨기보다 야당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겸손하고 간절하게 부탁해야 한다. 혹시 아는가. 국민이 더 큰 선물을 줄지.

김교준 정치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