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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마차(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구상에 몇 안남은 사회주의국가 쿠바의 아바나 거리에는 요즘 말이 끄는 마차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그런 낭만적인 마차가 아니다.
짐을 싣거나 사람을 태우는 교통·운송수단으로 마차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쿠바정부가 갑자기 자동차를 몰아내고 마차를 등장시킨 것은 아바나거리에서 매연공해를 추방하기 위해 그러는 것도 물론 아니다. 기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쿠바는 매년 필요한 에너지의 70%에 해당하는 1천2백만t 이상의 원유를 국제시세의 절반값으로 소련에서 수입,국내수요를 충당하는 한편 원유의 일부를 국제원유시장에 내다 팔아 상당한 재미를 보아왔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부터 소련이 국내사정을 이유로 원유공급을 23% 줄이고 수출가도 두배 가까이 인상했다.
그뿐 아니라 지난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공산체제 유지비로 매년 50억∼60억달러씩 제공하던 군사 및 경제원조를 작년엔 35억달러로 대폭 삭감했는데 그것마저 머지않아 중단될 상태에 놓임으로써 쿠바의 앞날은 그야말로 캄캄하기만 하다.
그래서 쿠바는 지난해부터 궁여지책으로 일종의 「경제 민방위훈련」을 전격적으로 실시해 주목을 끌었다.
소련으로부터의 생필품 및 석유공급 중단조치에 대비하기 위해 수도 아바나의 공장노동자와 사무직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훈련은 에너지소비를 줄이고 석유를 절약하는데 주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거리에는 마차가 등장했고,한 철강공장에서는 석유대신 나무를 태워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이용,공장을 가동하기도 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이러한 진풍경은 도시와 농촌을 가릴 것 없이 쿠바의 어느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특히 농촌의 경우는 종전의 트랙터역할을 가축들이 훌륭히 해내고 있어 어찌보면 목가적이기도 하다.
실제로 카스트로는 40만마리의 황소를 쟁기와 마차용으로 훈련시키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비록 평양거리에 마차는 없는지 몰라도 개방과 개혁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의 북녘 사정인들 쿠바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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