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안끝난 인류의 지적고뇌(유승삼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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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러시아혁명의 총성이 울리던 날 밤에 소집됐던 소비예트총회에서 트로츠키는 사태의 평화적 해결책을 주장하는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원들에게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회의를 끝장냈다.
『당신들의 역할은 이미 끝났다. 이제 당신들 가고 싶은데로 가라. 역사의 쓰레기통속으로­.』
그로부터 74년이 지난 오늘,그런 선언을 듣고 있는 쪽은 다름 아닌 바로 그 볼셰비키의 충실한 후예들이다.
이런 역사의 대반전과 아이러니를 직접 목격하면서도 여전히 냉철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우리네처럼 볼셰비키체제와 극단적으로 대립하며 살아온 처지엔선 흥분과 긴장이 일시에 빠지는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는 일이다.
○소체제 붕괴이후…
그러나 소련사태도 지금은 절정을 지난 시점이다. 동구사회나 소련이 앞으로 얼마나 더 혼란과 암중모색을 계속할지는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지만 어떻든 그들은 나름대로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새로운 국가건설과 체제모색에 나선 상태다.
요즘 우리사회 일부엔 소련쯤은 우습게 보는 기류마저 형성되어 있지만 소련은 여전히 미국조차 그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는 초강대국이요,무한한 저력을 지닌 나라다. 그런 나라가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길게 볼때 우리에게 대해선 하나의 도전이며 새로운 경쟁의 선언이다. 소련이 본격적으로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다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쯤에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사실 소련 체제의 붕괴자체가 주는 교훈은 적어도 우리들에겐 별반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 스스로의 정치사를 통해 자유에의 갈망을 영구히 억누를 수 없다는 점,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교훈을 직접 체득한바 있다.
선진국의 정치지도자나 지식인사회는 그런 초보적인 교훈이나 음미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 교훈을 음미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 사회가 그만큼 비민주적이며 정치적 후진사회임을 반증해줄 뿐이다. 선진정치 지도자나 지식사회는 사회주의 사회의 붕괴와 관계없이,오래전부터 사회주의 이념의 도전을 심각히 받아들이며 진지하게 고뇌해왔다. 따지고 보면 그런 이념적 내용 자체도 사회주의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독창적으로 제기한 그들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그것은 이성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인류의 고뇌이자 지적 유산에 맥이 닿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그러한 이념적 도전과 질문들을 진지하게 접수해 오히려 자신들의 체제개혁과 유지에 활용해왔음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병폐의 안티테제로 제기되었던 사회주의적 이념과 이상의 저 역사 오랜 질문들 가운데는 이미 그 오류가 증명된 것,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도 많지만 여전히 설득력과 생명력을 지닌 것도 그 못지않게 많고 앞날의 판정을 기다리는 인류의 숙제가 되어 있는 것도 적지 않다.
그러한 한 자유민주체제의 앞날도 그 자체의 장점을 유지,발전시키는 문제 못지않게 이미 제기된 도전과 질문에 어떻게 응답해 나가느냐에도 크게 좌우될 것이다. 인류의 지적 고뇌는 끝나지 않았다.
소련 체제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인류전체에 제기되어 있는 본질적 질문들은 참으로 많다. 우선 당장 현상적으로도 소련의 실패가 곧 자본주의의 계속적인 성공을 시사해주는 것인지부터가 확실치 않다.
○자본주의 모순 시정
그동안 결과적으로는 자본주의에 좋은 자극제와 비판자가 되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쇠락한 지금,앞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어떤 자극에 의해 자체 모순을 시정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도 새로 제기되는 질문이다.
시각을 좁혀 경제정책적인 문제만 보아도 선진 서방세계는 소련 등의 통제경제체제를 비난해왔지만 2차 대전후에는 스스로도 작은 정부에 의한 자유방임이 아니라 큰 정부에 의한 자본과 수요의 통제를 통해 경제적 발전을 이루어온 점을 깨닫고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제기되어 있는 철학적 질문들도 많다. 자유 못지 않게 중요한 평등의 가치는 어떻게 보장해 나갈 것인가. 소련 체제의 경제적 실패를 놓고 볼때 개인적 이윤동기를 당근으로 한 자본주의적 경쟁이 발전의 불가피한 요소임이 더욱 확실해졌다고들 말하지만 그로 해서 빚어질 늑대대 늑대의 인간관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낙관적 신념 아래 추구한 공동선이 이룩하기 어려운 이상이었다고 여겨지는 오늘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본성이 오직 이기주의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일까. 또 설사 그렇다해도 그 억제가 개인의 도덕적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인가.
선진사회로 발돋움하려면 우리들도 다른 선진사회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철학적이고 본질적인 질문들을 진지하게 수용해 우리 현실에 맞는 우리 나름의 해답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이데올로기 갈등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이면서,이념의 대립을 초극해 국토통일을 이룩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그런 문제들에 대한 내세울만한 지적 축적도 보잘 것 없고 사색의 풍토도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 비극이다. 이야말로 국토분단 이상의 냉전의 폐해다.
○우리엔 새로운 도전
우리들은 더이상 세계의 물결에 떠다녀선 안된다. 맹목적인 현실주의만 추구해서도 안된다.
소련 체제의 붕괴 이후를 우리는 오히려 새로운 질문과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도 「미래의 음식점을 위한 요리법」을 자신있게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발전을 위해선 그것은 모색돼야 하고 그것은 사회에 이상을 추구하는 자세가 존중·보장될 때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상은 그 사회의 방부제다. 사회구성원들이 가슴속에 이상을 품고 있는 한 아무리 그 사회가 당장은 고난에 처해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을 잃은 사회는 아무리 현재가 풍요롭다 해도 조만간 고인 정체되고 물처럼 썩게 마련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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