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대북 지원 내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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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유 100만t 상당의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 2.13 베이징 합의문에 명시된 북한 핵 시설 '불능화(disablement.영구적 기능 정지)'의 대가다. 대북 지원을 거부한 일본을 제외한 한국.미국.중국.러시아가 25%씩 맡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어떻게 구성될까.

지원 항목이 경제 지원, 에너지, 인도적 물자 등 세 가지로 표현된 것은 지원국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6자회담에서 드러난 각국 입장 차이의 반영이기도 하다.

미국은 6자회담에서 "북한 주민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는 지원을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군사적 전용 가능성이 있는 중유를 주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합의 뒤 8년 동안 총350만t의 중유를 건네고도 북한의 핵 폐기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나쁜 추억'이 있다. 미국은 대신 식량과 의약품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형식은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지원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또 풍력 발전 설비를 제공할 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비공식 논의 석상에서 풍력 발전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 단기간에 이뤄지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경제적 지원과 에너지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 경제적 지원은 채무 탕감 형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러시아에 80억 달러가량의 빚이 있다. 에너지 지원은 송전이 유력하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브레야 수력 발전소를 통한 전력 지원이다. 이 발전소는 올해 안에 추가 설비가 완공돼 전력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다. 북한은 수년 전 이 발전소에서 50만kW를 보내 달라고 러시아에 요청한 적도 있었다.

러시아는 브레야 발전소의 전력을 한국과 미국 등에 팔 생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한국이 러시아에 돈을 내고 러시아가 전력을 북한에 공급한다는 아이디어다. 하지만 송전 시설 문제 때문에 북한 안의 러시아 전력 공급 가능 지역이 제한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한국과 중국은 지원 품목 면에서 자유롭다. 한국은 무기 개발 등에 전용될 가능성이 없는 물자라면 중유.식량.생필품 등 북한이 원하는 것을 보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구체적 제공 물자는 남북 간의 협의에서 결정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중유와 식량 지원을 꾸준히 해온 중국도 한국과 비슷한 입장이다.

◆드러난 북한의 협상 코드=6자회담 사흘째인 10일 정부 당국자는 "이번에는 뭔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이 전력 200만kW에 상응하는 중유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직후였다. 이는 중유는 330만t에 해당하는 양이라 외신 등은 협상 결렬을 예상하는 보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 당국자는 "북한은 협상 타결 의지가 있을 때는 요구 조건을 일단 최대치로 제시한 뒤 선심 쓰듯 요구 수준을 줄여간다"며 "협상 의지가 없을 때는 요구 사항 없이 정치적 구호만 외친다"고 설명했다.

협상 타결의 징조는 또 있었다. 대표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미국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이다. 지난 6자회담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미국을 맹비난했던 그는 이번에는 기자들에게 "알에서 병아리가 깨어나기 전에 수를 세지 않을 것"이라며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다.

베이징=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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