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선거법 개정 당략에만 집착/선관위안 반대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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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심 유죄땐 자격정지안엔 모두 발끈/도덕성 무시한 태도… 거센 비난 여론
중앙선관위가 지난달 30일 방대한 분량의 국회의원선거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하자 여야 일각에서는 위헌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다른일각에서는 엄격한 처리에 공명해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선관위는 여야의 반발에 대해 즉각 위헌이 아님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선거법이 정치권의 전유물이 아님을 강조해 정기국회를 앞둔 여야의 선거법개정협상에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민자·신민 등 여야는 선관위의 의견제출을 계기로 지금까지 선거구제 변경 또는 선거구 증설여부에만 초점을 맞춰왔던 태도를 바꿔 돈안드는 선거 실시를 위한 선거법개정안을 정기국회전까지 마련키로 하는 등 준비를 서두르고 있으나 대체로 당략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정치권이 가장 거부반응을 보이는 대목은 「선거법위반으로 1심에서 벌금 50만원이상의 유죄판결을 받은 당선자에 대해 대법원의 확정판결때까지 국회의원 직무를 정지한다」는 부분.
신민·민주·민중당 등 야당은 물론 민자당내에서도 상당수 의원들이 헌법 27조4항의 「모든 국민은 유죄판결이 확정될때까지 무죄」라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원기 신민당 사무총장은 『법앞에 만인이 평등한데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1심판결만으로 의원의 직무를 정지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고 민자당 선거제도개선소위 위원인 신오철 제4정책조정실장도 『이해는 가지만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동조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의 임좌순 선거국장은 『1심의 유죄판결이 나오면 국회의원의 직무를 정지시키자는 것이지 국회의원 신분까지 박탈하자는 것은 아니다』면서 『형사재판의 경우에도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나면 수감조치된다』며 무죄추정의 원칙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고 맞받아쳤다.
선관위측은 개정의견을 마련하면서 자체내에서도 『위헌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돼 원로변호사들로부터 자문을 받았으며 중앙선관위원장인 윤관 대법관과 선관위원들의 검토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현행법상 ▲국가의 고위공직자가 탄핵소추를 받으면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날때까지 권한행사를 정지시키고 있고 ▲공무원법상 공무원이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면 즉시 그 직위를 해제시키도록 돼있는 점등을 예로 들면서 『국회의원의 직무는 일반공무원에 비해 법적·도덕적 비중이 훨씬 크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선관위측의 논지에 대해 박희태 민자당 대변인은 심지어 『기소만 돼도 직위해제되는 공무원법에 대해 현재 위헌시비가 일고 있다』고까지 주장하면서 『선출직인 국회의원의 직무정지는 부당하다』고 제밥그릇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여야의 이같은 반발에 대해 대체적인 여론은 비판적이다. 현재 명백하게 선거법을 위반했던 서석재 의원이 유죄판결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민자당의 비호속에 국회 의정활동을 버젓이 하고 있고 홍희표 의원은 예결위 간사를 하기도 했다.
뇌물을 받은 죄로 역시 유죄판결을 받은 혐의의 박재규 의원이나 기소된 이상옥 의원 등과 수서사건의 김동주 의원 등이 모두 석연찮게 풀려나 일부는 의원활동을 하는 판이고,신진수 의원은 두차례 피소를 당하고서야 겨우 당직을 내놓은 정도.
구속돼 있는 의원은 보안법위반의 서경원의원 외에는 수서사건의 이태섭·이원배 의원 뿐인데 대체로 『재수가 없다』는 동정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집권당이 앞장서서 범법의원들을 비호하고 있으니 특권의식에 젖은 의원들은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 이러한 의견에 동조할리 없다.
선거법위반이나 부정부패혐의로 기소된 의원들에 대해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까지 대법원판결이 나지 않고 있는데 대해서는 법원측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이번 비난여론에 선거사범에 대한 재판기간 단축의견에 대해 여야 모두 찬성의사를 보이고 있다.
김윤환 민자당 사무총장은 심급당 6개월 모두 1년6개월이라는 선관위안보다 더욱 축소된 「3심까지 6개월」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박상천 신민당 대변인과 김부겸 민주당 부대변인도 『선거법 경시풍토를 고치기 위해 재판시한 제한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여야협상과정에서 재판시한 설정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이 규정은 강제규정이 아닌 훈시규정으로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정치권과 법원의 의지가 관건이다.
개인연설회를 허용해야 한다는데에는 여야 모두 같은 의견이지만 합동연설회에 대해서는 민자당은 폐지를,신민당은 현행대로 3회를 주장하고 있고 금품제공·향응 등 부정·탈법운동의 온상인 당원단합대회 규제에 대해서도 여야는 난색이다.
또한 현행 18일의 선거운동기간 단축에 대해 민자당은 이미 2일 단축안을 내놓고 있는 반면 신민당은 운동기간이 짧을 경우 유권자들과의 접촉기회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여야 정당들의 의견은 「공정한 선거」를 위한 의견이라기보다 자기당의 이해반영에 만 급급하다.
원내 의석이 없는 민중당이 선관위 의견에 거의 찬성하고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야가 선거법개정협상에서 선거구분할이나 논의하고 공명선거의 제도적 개선에 관심을 쓰지 않는다면 여론의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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