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JERIReport] 정부 기업법 개정안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2월 초 법무부는 기업들이 반대해온 이중대표소송제도와 회사기회 유용 금지, 집행임원제 등 3대 쟁점을 모두 상법 개정안에 포함한다고 발표했다. 법무부가 지난해 10월 입법예고했던 내용보다는 부작용을 줄이는 쪽으로 개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법무부의 당초 목적과는 여전히 어긋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친기업적 행보를 보이면서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거듭 밝힌 데 비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글로벌 추세와도 상반된다. 기업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영국.독일.프랑스.호주.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기업들에 보다 많은 재량과 선택권을 부여하려는 '기업법제의 유연화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10년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2001년과 2002년에 상법을 대폭 개정한 데 이어 2002년부터 '회사법제의 현대화'를 추진해 2005년에는 상법과 분리된 '신회사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중대표소송제도는 종속회사가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경우, 지배회사의 주주가 종속회사를 대신해 종속회사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는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주주대표소송'을 상법상 '실질적 지배관계'로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종속회사 이사에 대한 소 제기는 모회사(50% 초과 지분 소유회사)의 주주가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당초에는 실질적 지배관계가 없더라도 50% 이상 소유한 모회사의 주주는 종속회사의 이사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이번에는 실질적 지배관계도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어 소송 요건이 강화되긴 했다. 정부가 이러한 이중대표소송제도를 도입하려는 목적은 현행 주주대표소송제도의 단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현행 주주대표소송제도하에서 지배회사의 대주주가 종속회사, 특히 비상장 종속회사에 대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손해를 끼친 경우 종속회사 또는 그 주주는 그 회사 이사에 대해 대표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이중대표소송제의 도입을 통해 지배회사의 소수주주로 하여금 종속회사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1999년 이후 지주회사의 설립과 전환이 쉬워져 지주회사의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고, 이의 연장선에서 이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과 이를 법제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주주의 권리를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일부 주에서만 판례법으로 인정되고 있고, 영국 역시 이중대표소송의 법제화를 검토했으나 법제화가 도움이 되거나 실용적이지 않다며 거부된 바 있다. 일본 역시 다중대표소송의 입법화를 시도했으나 지배회사의 주주가 그 이사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는 대표소송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함으로써 결국 입법화가 무산되었다.

회사기회의 유용 금지 역시 당초 이사가 회사의 사업기회를 유용해 자기 또는 제3자로 하여금 이익을 취득하게 하면 안 된다는 취지로 입법예고되었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서 이사가 제3자로 하여금 회사의 사업기회를 유용하게 해 다시 회사와 거래하는 경우에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규정으로 변경됐다. 이는 이사의 자기거래뿐만 아니라 제3자의 회사와의 거래까지 이사회 승인대상으로 확대하는 의미가 있다.

문제는 무엇을 회사기회로 보느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회사기회의 판단기준은 다음의 세 가지다. 첫째, 그 기회가 회사에 이익이 되나? 둘째, 그 기회가 회사의 사업범위 내에 속하나? 셋째, 그 기회가 회사에 귀속되는 것이 공정한가? 그러나 최근에는 위의 세 가지 기준에 '회사의 법적.재정적 능력과 사업의 실현 가능성' 및 '이사회 공시' 요건을 추가하거나, 또는 역량 조사.기능성 조사.소유권 조사.사적 이익에 관한 조사 등 네 가지 판단기준이 제시되기도 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결국 회사기회에 관한 판단기준은 매우 모호하며, 미국의 판례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회사기회의 유용 금지를 관념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를 적극적으로 입법해야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관련 법리는 하나의 제도로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사례의 모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내용을 법제화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일반화된 기준을 설정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를 입법화한 예가 없으며, 미국의 경우에도 이사의 공시의무를 강조하고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행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관련 규정으로도 이사의 회사기회 유용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 섣부른 입법화로 회사기회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양산되거나 소송남발이 초래된다면 이는 세계적인 회사법 경쟁과 기업의 유연화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기존의 이사회 및 대표이사 등이 수행하던 업무집행 기능을 신설되는 집행임원으로 하여금 전담하도록 하는 제도인 집행임원제는 입법예고안과 달라진 게 없다. 그래서 당시 지적된 문제점 역시 그대로 남아 있다. 집행임원제는 기본적으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유도하는 제도로서 우리나라의 기업현실에는 잘 맞지 않는다. 이 제도는 일본의 신회사법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데, 그룹 총수가 없는 일본의 기업체제에는 적합할 수 있어도 총수가 있고 소유와 경영이 통합된 우리나라 기업체제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법무부는 이 제도의 현실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회 의장과 집행임원의 겸직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는 업무집행 기능과 감독기능의 이원화라는 제도의 도입 취지와 모순된다.

일부에서는 이 제도의 도입 여부를 기업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므로 별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감사위원회의 예에서 보듯이 증권거래법 개정 등을 통해 강제화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따라서 기업의 자율성을 중시한다면 집행임원제는 명시적인 상법 규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업이 정관으로 정해 자율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충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