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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관광사업에 발벗고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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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중국의 국내비행기 시간은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북경을 떠날 무렵 혹시 여정에 차질이 있으면 어쩌나 하고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서안 가는 비행기가 가장 불확실하다는데 오늘은 제시간에 떠난다니 반신반의하면서도 억지로 마음을 놓는다. 정장을 위한 양복과 구두등은 모두 우리 상사에 부탁하여 서울로 보내고 가벼운 보따리 하나를 들고 비행장으로 향한다. 아니나 다를까 비행기는 오늘도 연발이다. 기다리는 일에는 도가 트인 중국사람들 숲에서 앉아 있기를 두시간.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3시반에 비행기에 오른다. 항공사에서 부채를 하나준다. 모양은 신통치 않았으나 무더운 비행기 안에 한줄기 바람을 일게 했던 그 부채는 그후 사천생 성도에서 잃고 말았다.
승객은 40명정도 될까, 구식프로펠러 비행기다. 밖으로부터 공기가 새들어 기내 일각이 안개로 자욱해지고 내 좌석에는 콩같은 물방울이 떨어진다. 그래도 비행기가 뜬 것만해도 다행인데, 물방울 따위는 애교로 볼 수 밖에 없다. 여자 승무원이 주는 비스켓·육포, 그리고 오렌지주스가 그런대로 좋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광막한 대륙. 황하일지도 모를 은빛의 강줄기가 보인다. 이 지역이 중국문명의 발상지이고 고대 중국의 갖가지 활극이 벌어진 대평원이다.

<실크로드의 기-종점>
비행기안에서 어떤 독일 아가씨를 만났다. 아가씨는 아마 젊은 사람을 선호하리라 생각하고, 그녀와의 대화는 동행한 정영록박사에게 양보했다. 서안에서 외국어를 가르친다는 그녀는 서안이자기의 제2의 고향이라 한다. 서안의 생활은 만족스럽고 그곳의 풍물은 「단순하지만 아름답다」고 한다. 비행기가 서안비행장에 착륙하자 외국인 승객들은 일제히 「예이!」하는 환호와 함께 박수를 친다. 단순한 야유는 아닌 것 같았다. 「중국사람들이 외국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특출한 힘을 가지는 정도는 놀랄만하다」고 한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 생각난다.
서안은 한·당제국의 수도였던 장안. 실크로드의 종점이자 기점. 중국 문헌에 「고산심목」(코가 높고 눈이 깊다)으로 묘사된 서역사람들이 붐비던 고장. 진나라 수도 함양. 주나라의 수도 호경이 모두 이곳이었다. 송나라 이후로는 지방도시로 되고 말았으나 지금도 합서생의 교육과 상공업의 중심으로 인구 6백만의 대도시다.
서안만큼 찬란한 영화와 찬란한 전란을 많이 겪은 도시는 아마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지금도 천년전의 영욕을 말해주는 유적들은 어딘지 모르게 영고의 애수에 젖어있다.
중국의 역사를 다소라도 아는 사람은 이곳의 한치 한치의 땅이 인간의 피와 땀과 눈물로 물들어 있음을 느낄 것이다.
호텔에서는 유창한 일본말을 하는 여종업원이 우리가 일본사람인줄 알고 일본말로 친절히 안내한다. 일본말은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으니 이 곳 외국어대학에서 배웠다 한다. 서안이 관광사업을 위해 발벗고 나섰음을 실감한다. 우리의 안내원(왕학혜여사라는분)은 영어를 썩 잘하는데 그녀도 외국어대학에서 영어를 배웠다 한다.
서안의 골목길은 서울의 60년대의 골목길을 연상케 한다. 이 부근에 큰 서점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왕여사가 어딘가의 서점에 안내한다. 가 보니 책도 많지않고 내용도 빈약하다. 이 서점은 서안의 대표적인 서점이 아닐 것으로 보았지만, 어차피 시간이 늦어 더 이상 물어 보지 않았다. 나는 어디를 가나 서점을 찾는다. 서점에 가보면 그나라의 지식의 정도를 짐작할수 있다. 나는 나라의 수준은 l인당 소득 보다는 1인당 지식이라는 것을 측정할수만 있다면 그것이 더 좋은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대국가란 경제·사회·정치 모두 지식없이는 발전할수없는데, 서점에 가보면 그 나라의 지식수준을 짐작할수 있기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서점에 가보면 그나라들이 어째서 선진국인가를 알 수 있다. 이나라들의 고서점에 가보면 문화의 깊이를 안다. 호텔이나 도로, 식당은 다 비슷비슷해도 서점은 비슷비슷하지 않다.
사뭇 다른 것이다. 이번의 중국여행 과정에서도 가는 곳마다 서점을 찾았다. 서안·성도·중경·복주, 그리고 향항의 서점들. 그때마다 중국을 위해 적잖게 실망했다.
어떤 골목길에서 남자 7∼8명이 장기를 두고 있다. 정박사와 나는 한참 어깨너머로 그 장기판을 들여다 보며, 이들의 행마에 대해 경을 하며 웃기도 했다. 그러나 장기두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이나 아무도 우리들이 한국말을 하면서 웃는데 대해 개의하는 사람이 없다. 쳐다보는 사람조차 없다. 남이 뭐라하든, 상관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활습관인 것 같다. 중국의 어딜가나 사람들이 와글거리고 떠들썩하지만 그들은 항상 웃는 표정이고 짜증을 내거나 싸우는 일이 없다. 우리가 웃는 것은 그들로 보면 오히려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기는 그들은 우리가 어떤 다른 지방의 중국인인줄 알았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각 지방의 말 가운데에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황능·병마통갱 명물>
내가 북경에서 설모교씨와 대학할때, 설씨의 사투리를 어떤사람이 표준어로 통역을 해야 나의 통역이 그말을 알아듣는 것을 보았다. 그 후에도 많은 중국인 숲에시 우리끼리 한국말을 아무리해도 중국인들은 전혀 들은체 만체했다. 남의 일에 일일이 신경을 쓰다가는 중국에서 살 수도 없다는 듯이.
서안지방의 최고의 명물은 진고황능과 그 부근에 있는 병마용갱이다. 진시황은 기원전 259년에 탄생하여 13세때에 진와 왕위에 올라 37년동안 재위했다. 당시는 전국시대의 말기로 중국천하는 7개의 제후국으로 나뉘어서 죽는냐 사느냐의 싸움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진은 7국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가장 강한 군사대국으로 그 위세는 천하를 떨쳤다. 이나라는 시황때에 와서는 외교적인 교란으로 6국을 현혹시키고 나서, 고도로 훈련된 막강한 군대를 풀어 6국을 차례로 멸하고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천하를 통일했다.

<부노초 찾다가 병사>
사상 최대의 폭군으로 악명높은 시황은 최근에 와서 다시평가되기 시작하여 폭군이 아닌 영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가끔은 모택동을 그에 비하기도하며 안내원 왕여사도 그를 위인이라고 치켜 올린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보면 그는 위인이라기보다는 역시 폭군이었다. 사람을 알아보는 혜안도 없었고 백성을 교화하고 다스리는 정치안식도 없었으며 진나라를 위해 차분히 기초를 정비하는 지혜도 없이 오직 자기일신만 아는 욕심꾸러기였다. 평생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천하를 돌아다녔는데 다섯번째 산동성방면으로 갔다가 수도로 돌아오는 도중 급병으로 차안에서 50세를 일기로 죽었다. 37년간 재위하는 동안 그의 최대의 관심사는 자기의 능묘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36년동안이나 그 일을 위해 전력을 기울였으나 묘의 완성을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묘는 고속도로변에 있는데, 진시황능이라 쓴 석비가 그 입구를 가리키고 있다. 묘는 아주 편편한 팔자형으로 된 인공의 산이다. 묘 뒤쪽에는 높고 거친 산맥이 일렬로 뻗어있고, 그 앞쪽에는 일망무진의 평야가 있다. 이 평야의 한 가운데, 그의 능묘는 마치 대군을 지휘하는 사령탑처럼 홀로 서 있어 역사상 처음으로 해내를 통일한 군주의 기상을 드높이고 있다.
능에 올라가기 위해 차를 길옆에 세우려드니 주차료를 내란다. 공노에 주차하는데, 또 차가 그리 많지도 않은데 주차료를 받는다는 것은 공산국답지않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전국민이 모두 돈벌이에 나서있는 형편이기 때문에, 따져도 헛노릇이다. 주차료를 주고 천천히 계단을 따라 능위로 오른다.
능의 사주는 아래로부터 위에 이르기 까지 석류의 과수원으로 덮여 있다. 빨간 석류꽃이 피기시작하고 있어 여간 아름답지않다. 능의 꼭대기에는 구자형으로 석조휴식처가 마련돼 있어 거기서 동서남북의 장관을 바라볼 수 있다. 그 휴식처 주위에는 지하 수십미터에 누워 있는 시황의 영이 실렸는지 빨간 석류꽃이 초하의 바람에 떨고 있었다.
진시황은 자기의 묘 주변에 어마어마한 지하궁전을 만들고 자기의 영혼이 지휘할 도기로 만든 군단, 자기의 영혼이 타고다닐 4두마차를 비롯, 시가와 원임등을 만들었다.
그의 지중왕국을 방위하도록 조직된 병마용 지하군단은 아직발굴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이주변에는 앞으로도 많은 지하시설이 발굴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일반에 공개되고 있는 제1,2,3갱에는 병사 약 7천명, 말 약 6백필, 전차및 승용차 약 6백대가 지하에 진을치고 있다. 발굴된 병사와 말들은 모두 등신대인데, 가장 놀랄만 한 것은 그들의 표정이 마치 살아 있는 것과 같다는 점이다.

<용병표정 십인십색>
명령만 받으면 곧 대군이 움직일 것 같이 보인다. 이들 용병이나 용마가 묻혔을 때에는 모두 산 사람이나 산 말처럼 분장하고 채색이 영롱했느데 2천2백년동안 지하에 있다보니 채색은 모두 부식하여 분장이 남아 있는 것이 별로 많지 않고 이제는 모든 것이 흙색이다. 그러나 이들 용병의 모양은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생기에 넘쳐 6국을 멸하고 흉노에 호령하던 진의 강군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병사와 장교가 입은 외투·투구·간발및 구두등은 진나라의 막강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모두 아주 정제하다. 군인들의 표정은 십인십색이다. 어떤 사람은 점잖고, 어떤 사람은 빳빳하고 사나우며, 어떤 사람은 능글능글하다. 그들의 머리 모양도 다양하다. 뒤로 틀어올린 모양,외로부터 땋아시 납짝하게 머리에 둘인것, 상투처럼 꽁친 형국, 댕기들 가지고 묶는 모양등 형형색색으로 재미있다. 그들 눈의 모양을 보아도 몽골족처럼 위로 치달아서 사납게 보이는 눈매, 이글이글한 눈동사가 툭튀어나온 것, 명령을 기다리느라고 바짝 긴강한 눕조리를 하고 있는 것, 생동감이 흐른다. 그들의 수염도 모두 일품이다. 구레나룻치도 있고, 코밑 수염만 남겨두고 말끔히 면도한 모양, 카이저의 스타일로 수염끝을 가지런히 비버올려 핸섬하게 보이는 장교도 있다. 병사와 장교들은 일사불란의 규율속에서도 각기 개성을 유지하고 있어 지하의 군대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졸작칠절 일수
진병마용갱
진제능양해내시
지중은축만인사
조용하노구영약
부노금단기자지(말의뜻. 조용=진시황의 별명 영약=부노초를 말함 금단=신선이 쓰는 약이름)
진시황이 천하에 매(마)처럼 날릴 적에 땀밑에 남몰래 만명사단을 감추었더라.
시황이시여, 당신은 뭣하러 불로초를 구하려 했소.
늙지않는 좋은 약을 미리 갈아시는 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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