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나의 선택 나의 패션 56. 기성복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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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60년대 말 기성복으로 만든 '모녀 패션'. 배우 최은희씨(右)와 안인숙씨가 각각 엄마와 딸 역을 맡았다.

하와이에서 생활한 지 2년이 다 돼가던 어느 날, 나는 짐과 이혼하고 혼자 서울로 돌아왔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기성복 만들 준비에 나섰다. 명동 부티크를 대대적으로 수리해 아래층을 기성복 매장으로 꾸몄다. 기성복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2층 맞춤복 매장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미우만백화점(지금의 롯데백화점 자리) 2층에 기성복 코너를 연다는 계획도 세웠다.

나는 그동안 맞춤복을 만들면서 한국 여성의 평균 체격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이 자료를 기본으로 체형별 기성복을 제작해 내놓기로 했다. 기성복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캐치프레이즈로는 한국일보 장명수 기자(훗날 사장 역임)의 도움을 받아 지은 '마음대로 입어보고 골라 입는 옷'으로 정했다.

맞춤복의 단점은 눈으로 보고 예상했던 느낌과 실제 입었을 경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옷을 구입하기 전에 입어볼 수 있다는 것은 당시 소비자들에게 상당한 매력이 아닐 수 없었다. 신문에 '기성복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요즘 패션 기자들은 이 기사를 보고 "웃기는 기사"라며 재미있어 한다. 하지만 그땐 그랬다.

드디어 백화점 매장의 개장일이 됐다. 백화점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2층 기성복 코너로 몰려 들었다. 백화점 고객들을 위한 간단한 쇼가 끝나자 기성복을 입어보느라 난리가 났다. 모델들이 입고 보여준 옷을 당장 자신이 입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 소비자들에게는 너무나 신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준비했던 의상들이 당일 모두 팔렸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에 제품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됐다.

이렇게 해서 1966년, 대한민국 여성복의 기성복 시대가 열렸다. 기성복이 짧은 시간에 자리 잡게 된 데는 56년 텔레비전 방송이 첫 전파를 탄 것과 흐름이 맞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사람들의 기호는 영화에서 TV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이 같은 점에 주목, 인기 프로그램에 의상을 협찬한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영화 의상과 달리 TV 의상은 하루 정도만 빌려주면 되기 때문에 부담도 적었다.

탤런트들은 의상비가 절약되었고 나는 나대로 빠르게 컬렉션을 홍보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 프로그램 말미에 '의상 노라노'라는 캡션을 반드시 올려서 방영하도록 했다. 첫 번째 협찬은 TV드라마'내 멋에 산다(66)'의 주인공 전향이씨의 의상이었다.

강부자.여운계.사미자.윤여정.윤소정씨 등이 TV에서 활동을 막 시작했던 때였다. 그들도 내 의상을 협찬받았다. TV 탤런트들이 우리 숍에 드나든다는 소문이 나면서 고객이 더욱 늘어났다. 제대로 된 의상이 아쉬웠던 탤런트들은 아직까지도 그 시절을 잊지 않고 음식점에서 나와 우연히 마주칠 경우 은밀하게 식사비를 대신 내기도 한다. 고맙고도 흐뭇한 일이다.

노라 ·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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