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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망쳐가며 “병역기피”/연골수술 병역면제의 충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입영신검 허점 공공연히 이용/한두달이면 재생돼 부상 위장
의사들이 불법수술로 현역 입영대상자 45명을 징집면제자로 둔갑시킨 이번 사건은 허술한 현행 병역신체검사 과정을 이용,사실상 병역등급 결정권을 쥔 전문가들이 저지른 지능적인 범죄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병역판정을 둘러싸고 의사들이 허위진단서를 발급하거나 군의관들이 뇌물을 받고 낮은 등급으로 판정,말썽을 빚은 적은 있지만 「수술」이라는 고도의 의료행위를 통해 신체손상을 입혀 그것도 무더기로 병역을 기피한 사실이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다리·팔·눈 등을 수술,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항간의 소문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병역을 신성한 의무로 여기는 우리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은 군부대에서 입영직전 실시하는 병역신체검사의 허점을 이용,범행을 저질렀다.
즉 이들 운동선수들은 병무청에서 실시하는 1차 신검에서 대부분 현역판정을 받은 자들로 입영직전 무릎 수술을 받아 스스로 「병신」을 만든뒤,병무청보다 검사가 허술한 군부대 신검에서는 별다른 정밀검사 없이 진단서 결과가 그대로 병역등급판정에 반영된다는 허점을 노렸다.
이들은 입영 20∼30일전쯤 입원,무릎부분을 3∼10㎝가량 절개,연골일부를 떼어내는 간단한 수술을 한뒤 『연골파열로 평생불구가 돼 병역의무 이행이 불가능하다』고 기재된 허위진단서와 컴퓨터 단층촬영(CT) 필름을 입영후 신체검사때 군의관에게 제출했다.
군부대측은 X선으로는 연골촬영이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1회 촬영에 15만원 상당이나 드는 CT촬영을 수천명씩 하는 집단검사에서 실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 악덕의료진들이 작성한 진단서와 수술 및 조직검사기록만을 검토한뒤 등급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구원장 등이 수술한 45명 모두 완전 병역면제인 5급(1,2급 현역·3,4급 보충역)을 받을만큼 결과가 확실했다.
특히 이들 병역기피자들 중에는 진단서에는 오른쪽 수술을 한 것으로 돼있으면서 실제로는 왼쪽을 수술한 경우도 있어 군부대의 신체검사가 얼마나 허술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이들 운동선수들이 마음놓고 이같은 수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수술후 40∼50일후에는 원래 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
즉 25세 이하의 젊은층에서는 연골의 일부를 잘라내도 1∼2주 뒤부터는 연골재생 작용이 일어나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는 완전회복되는데 실제로 수술받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수술후 1∼2개월부터 버젓이 선수생활을 했다.
그러나 이들 선수들중 수술을 잘못받은 일부는 보행불편등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경찰은 한 수술 후유증환자로부터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불법행위가 지금까지 철저히 숨겨져왔던 것은 이들이 모두 전·현직 축구·씨름·육상선수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즉 이들 종목선수들은 운동도중 무릎연골 파열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군부대측도 의심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들 의사들은 의료보험으로 처리할 경우 나중에 의료보험조합 감사때 적발될 것을 우려,일반 환자로 처리하는등 치밀한 수법을 썼다.
이번 사건은 의료계·체육계가 조직적으로 관련돼 있거나 적어도 방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이러한 수술행위가 체육계에서는 알려진 비밀로 실력이 다소 모자라 국가대표선수에서 탈락,병역특례를 못받는 B급선수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이용돼 왔다는 것이다.
또 군의관들이 부상으로 생긴 자국과 수술로 생긴 흔적의 구별이 가능한데도 불구,이런 사실을 묵인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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