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 앞에 한없이 겸손해지는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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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성남아트센터 개관 이후 적극적인 공연유치 등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성남아트센터 2대 사장으로 연임되었다. '문화예술계의 마당발'로 불린다. 세계의 공연문화를 경험하기 위한 출장이 잦은 관계로 본의 아니게 세계 45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그는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중인 뮤지컬 '맘마미아' 홍보와 향후 2년간의 공연기획·유치를 위해 요즘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공무원 생활을 오래했지만 그래도 왕성하게 세계를 여행했던 적이 있었다. 1972년 문화공보부에서 근무할 당시 민속 공연단을 이끌고 유럽·중동·아프리카·동남아 등 세계를 누볐다. 4개월간 27개국을 돌아다녔으니 참으로 바쁜 일정이었다. 그 와중에도 각 나라의 관광지들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스페인에 가서 안익태 선생의 가족을 만난 일과 우리와 매우 닮아 있던 터키의 모습도 생생하다.

89년엔 서울예술단을 이끌고 미국과 캐나다 등지로 공연을 갔었는데, 그중 캐나다 밴쿠버섬을 잊을 수가 없다. 밴쿠버 섬은 밴쿠버 앞바다에 떠 있는 섬을 일컫는다. 미주 태평양 연안의 섬 중 가장 큰 섬으로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주도인 빅토리아가 바로 이곳에 있다. 밴쿠버 섬은 캐나다 부자들이 노후를 보내고 싶어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자연환경이 좋은데다 다운타운과 주거지, 문화시설 등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밴쿠버 섬이 북미 최고의 섬으로 꼽힌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맞아맞아'라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당시 그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골프를 쳤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이곳만의 풍광이 지금도 머리에 생생하다. 대자연 앞에서 "내 존재가 얼마나 하찮은가"를 깨달으며 겸손하게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

특히 밴쿠버섬의 대표도시 빅토리아는 영국 식민지였던 역사적 흔적 때문에 캐나다 속 영국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잘 가꿔놓은 꽃길과 건축물을 둘러보면 영국적인 색채가 도시 전체에 배어 있다. 영국의 품위와 바다 풍경이 시내 한가운데서 묘한 조화를 이룬다.

잔잔한 바다가 시내 중심 선착장까지 이어지는데, 윗쪽으로 국회의사당이, 오른편으로는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엠프레스 호텔이 멋드러지게 서있다(사진). 그 맞은편으로 노천카페들이 바다와 선착장을 둘러싸고 있다. 국회의사당이나 호텔들은 중세의 성처럼 고풍스럽기 그지 없다. 10층 이상되는 건물이 없어 눈을 거스르는 것 없이 파랗게 빛하는 하늘과 하얀 구름의 탁 트인 시야가 아주 일품이다.

당시 공연을 마친 후 바다를 앞에 두고 단원들과 모여 앉아 밤새도록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빅토리아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 모습 그대로 나를 기다려 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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