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제2혁명」/경제개혁에 성패 달렸다/험난한 「대변혁」의 앞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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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높아진 국민욕구 설득이 난제/미 일 원조 지연·연방분열도 큰 걸림돌
소련은 지금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연정,공산당 붕괴,그리고 교조적 공산주의자들의 퇴장으로 공산주의에서 민주화로 가는 역사적 대혁명을 맞고 있다.
그러나 이 대변혁은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앞으로 추진할 경제개혁의 성패,그 속도,국민들의 욕구기대에 따라선 또다른 혼란을 몰고올 것으로 우려된다.
지구를 진동하는 변혁을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소련 국민들은 구원의 안도와 긍지속에 「8월의 환희」를 맛보고 있다. 그러나 소련 국민들이 지난 수년동안 겪어온 경제적 곤궁이라는 현실은 그 환희속에 비탄의 겨울을 잉태하고 있다.
반동 쿠데타 세력을 자신들의 힘으로 물리쳤다는 소련 국민들의 흥분이 자칫 혼란으로 이어질지 모를 요인은 수없이 많다.
우선 개혁 자체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어느 사회건 개혁은 손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74년동안 지속돼온 정치·경제체제를 동시에 개혁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소련은 우선 이번 사태의 마무리를 위해 정치개혁을 서두를 것이 틀림없고,이 작업에만 최소 6개월∼1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제개혁을 정치개혁과 병행한다 해도 개혁안 확정과 그 시행,그리고 그 결과가 국민에게 느껴지기까지는 적어도 5∼10년이 걸릴 것이란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국민들이 이같은 개혁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인내해 준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역사상 시민혁명 등이 다 그러하듯이 혁명을 성취한 국민은 그 결과에 대한 기대가 클 뿐아니라 그것이 조속히 나타나길 기대한다.
많은 시민혁명이 반동세력에 다시 기회를 준 것도 이같은 국민들의 욕구상승이 적절히 조절되지 못했기 때문임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 흥분속에 빠져있는 소련 국민들이 냉정을 되찾게 되면 생활개선에 대한 욕구가 커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더구나 이들은 쿠데타세력을 자신의 힘으로 물리쳤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고르바초프와 옐친 두 지도자가 그들의 개혁을 방해하는 보수세력이 없어진 만큼 의욕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소련국민의 기대에 맞출만큼 빠른속도로 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가 문제다.
아무리 개혁을 강력히 추진한다 해도 구관료체제가 여전히 행정의 최일선을 담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에 참여할 것인지가 문제다.
일부에서는 이들의 파업 또는 태업을 예상하고 있다.
또 개혁과정에서 예상되는 수백만명의 실업자와 소비재부족·인플레이션이 사회에 어떤 충격을 주며 정치안정을 뒤흔들지 전혀 예측되고 있지 않다.
새지도부가 어떤 경제개혁안을 마련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지 않다.
시장경제로 전환을 위해선 ▲정부보조금 철폐와 시장가격제도도입 ▲루블화 태환성확보와 긴축재정 ▲중소기업 민영화 및 기업활동 보장 ▲해외자본투자 허용과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입자유화 등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쿠데타후 고르바초프는 이반 실라예프 연방총리를 비롯해 그리고리 야블린스키,유리 루즈코프 모스크바 부시장,아르키디 볼스키 등 개혁성향의 4인위원회를 구성해 국가경제운영과,특히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작업을 일임했다.
관심의 초점은 「신4인방」의 책임자 실라예프 총리와 소장파 급진경제학자 야블린스키의 구상이 소련 경제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느냐는 점에 모아진다.
작년말 샤탈린과 함께 「5백일 경제개혁계획」을 성안하고 미 하버드대 경제학자들과 공동으로 서방원조를 바탕으로 한 소경제의 시장경제화안을 마련한 바 있는 야블린스키는 크렘린내 보수파의 반대로 자신의 계획이 좌절됐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과연 그가 새로운 여건속에서 다시 등장해 경제계획안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그의 구상은 서방의 대대적 원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다가 농업·산업의 심장부인 우크라이나 공화국을 비롯한 많은 공화국들의 연방탈퇴라는 현실이 가로놓여 있다.
서방원조도 당장은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방원조의 큰몫을 차지할 미국·일본이 신중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이 소련사태후 원조의 필요성을 얘기하면서도 개혁의 우선을 여전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여러 변수들이 조직적·계획적으로 적시에 조화되지 못할 경우 욕구의 상승무드에 있을 소련 국민들의 불만은 누적되고,누적된 불만은 자칫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새 소련정치의 안정은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얼마나 빨리 효율적인 경제개혁안을 마련·시행하며,그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국민의 인내를 설득하며 서방의 지원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뉴욕=박준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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