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창예산 경제불안 부추겨/내년도 재정팽창 반대입장/윤원배 숙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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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과열 감안 경직성경비등 축소해야
정부가 잠정결정한 내년도 예산규모가 우리들의 경제능력에 적합한 것이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여당관계자 및 일부 경제관료들은 사회간접자본 확충등을 위해 재정기능을 살려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다른 전문가들은 현재의 경기과열상에 비추어 예산의 팽창은 옳지 않다는 주장을 펴고있다. 이들의 서로 다른 견해를 2회에 걸쳐 싣는다.
정부가 민자당과의 당정협의에 올리기 위해 잠정적으로 결정한 내년도 예산규모는 33조5천5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무려 24.2%나 늘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제기획원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도 내년도 본예산을 24.5%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7차계획 재정부문 계획위원회도 23∼25%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예산규모의 팽창률은 82년의 22%이후 최대이며 90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예산팽창추세의 연장이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역할을 확대하고자 하는 재정론자들은 재정수요를 강조해 재정확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와 같은 급격한 재정팽창은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우리경제의 현상을 고려할 때 잘못된 정책방향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우리나라는 지금 대규모의 재정수요를 필요로 하는 부문이 많이 있다. 심각한 성장애로 요인이 되고 있는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이 시급하다는 것은 모든 국민이 인식하고 있으며 농산물수입 개방에 대비한 농어촌구조조정,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개방등에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 외에도 국민복지욕구를 수용해야 하고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선심행정을 바라는 정치권의 요구도 증대될 것이다. 이러한 재정수요는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모두 다 그럴듯한 명분과 불가피성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살림살이는 경제를 안정시키면서 필요한 수요에 대응해야 하는 제약을 안고 있다. 필요한 사업이라고 해서 모두 한꺼번에 서둘러 실행에 옮길 수는 없다. 그 결과는 혼란으로 나타나 경제에 큰 부담만을 안겨줄 뿐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은 정부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총수요관리를 강화해야할 시점이다. 국제수지 적자는 정부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계속해 누적되고 있고 물가불안도 여전하며 금리 또한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정부가 겉으로는 안정을 내세우면서 경제불안을 확대시키게 될 대폭적인 재정팽창을 도모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정부는 균형예산이기 때문에 재정팽창이 경제안정을 해치지는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이러한 주장한 논리에 맞지 않다.
경기가 과열양상을 띠고 있을 경우에는 정부지출을 축소시키는 것이 재정운용의 기본이다. 만성적인 자금초과수요에 직면해 가격기구가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간접적인 수단에 의한 통화관리가 어려운 상태에서 경제안정을 위한 재정정책의 역할이 포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절약할 수 있는 부문이 적지않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재정이 갖는 중요한 문제점은 예산구조가 경직되어 있다는 점이다. 방위비·행정비 등 이른바 경징석경비가 예산 전체규모의 67%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경직성경비를 축소시켜 예산운용의 효율성을 제고시키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강구되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 단기적으로 상당한 예산감축을 기대할 수 있으면서 주어진 재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가 정치성이 짙은 불요불급한 선심성 공약사업을 폐기하거나 연기시키는 것이다. 사실 대통령의 단임제란 일단 선출되고 나면 선거공약이나 재선을 위한 선거에 얽매임이 없이 국가를 위해 소신껏 일할 수 있을 때에 그 장점이 찾아진다.
따라서 정부는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또는 다음번 선거를 겨냥해 선심행정을 베풂으로써 일부지역이나 계층의 이익을 위해 전국민이 손해를 감수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파행적인 정책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이전지출형태의 복지비를 성급하게 늘리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재정수요의 증대를 증세에 의해서만 해결하려고 할때 경제의 활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정부는 경직성경비와 불요불급한 사업계획을 최대한 축소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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