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생각은…

미술계 비리 관련자는 용퇴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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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런데 동생 집에 도착하자마자 조카들이 "큰아버지, 이번 미협 선거에 누굴 찍었습니까? 큰아버지와 같은 홍익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신 분이 당선됐다는데, 혹시 친구분이 아닙니까?"라며 최근 연이어 TV에 방영된 미술계 비리에 대해 이것저것 캐물었다.

필자는 얼마 전 미술대전의 공정성 시비로 서울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수사한다는 기사를 읽고 "우리 미술계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했다"고 생각했다. 어디 내가 서양화가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겠는가. 오랫동안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선생으로서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생각에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뜻있는 미술인들이 '정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미술계 정화운동에 앞장서고 있다는 소식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필자는 이번 사태에 격분하는 화우들과 여러 차례 만나보면서 오갔던 의견들을 한데 묶어 사태 해결을 위한 선택 방안을 미술계에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오늘날 전국적으로 무려 600여 개의 크고 작은 미술공모전이 난립해 있는 현실에서 매년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 한국미술협회(미협) 주관 미술대전을 아예 폐지해버리자는 강경한 의견이 팽배하다. 미술대전 비리 문제가 더 확대돼 우리 미술인들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망과 비탄을 주기 전에 미술대전을 폐지해야 한다.

둘째, 역사성과 정통성을 지닌 국전인 미술대전을 폐지하기보다 신속하게 미술인과 각계 중론을 수렴해 혁신방안을 찾자는 개혁론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미술대전 심사의 공정성과 개관적인 타당성 확보가 선결 과제다. 현재 미술대전의 특선작 이상은 '심사위원 실명제' 도입과 함께 채점 결과 등이 구체적으로 공개돼야 한다. 또한 공정한 심사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된 분들을 아예 처음부터 심사위원에서 배제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등 심사 제도를 쇄신해야 한다.

셋째, 미협 이사장과 지회장 선거 때만 되면 부정선거 문제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회원 자격을 억지로 만들어 신입회원으로 가입시킨 후 선거에 동원하는 것과 회비를 대납해 주는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 미협에서 정관을 재검토해 신입회원 자격 부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지금까지 미협 이사장 선거 때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위원들이 미협 이사장 추천 인물들이어서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그러므로 출마 후보들이 공평한 비율로 선정한 인사들로 선관위를 구성해 공정한 선거가 이뤄지게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미술계에 발생한 각종 사건과 사태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은 하루빨리 결자해지 차원에서 자진 용퇴해야 한다. 이번이야말로 우리 미술계가 환골탈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썩고 곪아터진 환부를 제도적으로 신속하고 철저하게 발본색원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런 기회는 영원히 없을 것이다.

장건조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