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의 물결… 모스크바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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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0만 군중 “민주주의 승리” 자축/고르비 “타협않고 자살하려 했다”
고르바초프의 대통령직 복귀 이틀째를 맞은 22일 모스크바는 군중 수십만명이 축제를 벌이는 잔치 한마당이었다.
옐친의 인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는 반면 고르바초프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왜소한 느낌이다.
한편 프라우다·이즈베스티야 등 관영언론들이 속속 「자유언론」을 표방하고 나섰다.
○…22일 정오 러시아공화국 청사뒤 광장에서 개최된 국민대회는 30만명이상의 군중이 참가,민주주의의 승리를 자축하는 축제 한마당을 벌였다.
이날 대회에는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을 비롯,셰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야코블레프,포포프 모스크바시장 등 민주개혁파 인사 대부분이 연사로 나섰으며 군중들은 이들의 연설 중간중간에 「러시아 만세」「옐친 만세」를 연호했다.
이날 대회는 한시간 반만에 끝나고 진행자측의 제의에 따라 붉은광장까지 시가행진을 벌였으며 23일에는 KGB가 있는 제르진스키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대회의 핵심인물인 옐친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은 대회기간중 내내 서 있었으며 그의 주위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자들이 엄중한 경호를 했다.
옐친은 다른 연사의 차례가 끝나자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공화국청사 뒤 담장을 「자유러시아공원」으로 명명하겠다고 제의했으며 군중들은 「자유」를 외치며 이에 환호로 응답했다.
한편 유럽의회의 기독민주그룹 지도자는 22일 옐친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할 것을 제안했다.
○…이날 대회에는 고르바초프가 참석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연단 바로 앞에는 군중들이 『고르바초프여!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구했는지를 잊지 말라』는 피킷을 들고 있어 주목을 끌기도 했다.
한 시민은 고르비의 어원이 고르프(혹을 의미)와 고르바치(곱사등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귀띔해 그의 장래 정치적 행로를 시사하기도 했다.
○…분노한 러시아공화국 군중 수천명이 KGB(국가보안위원회) 본부가 있는 모스크바시 중심가 루비얀카광장에 집결,「3일천하」로 끝난 이번 쿠데타 사태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KGB 건물벽에 각종 슬로건을 쓰거나 비밀경찰 창설자인 펠릭스 제르진스키의 동상철거를 시도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군중들은 이날 오후 4시부터 모여들기 시작해 곧 수천명의 인파로 불어났으며 오후 11시20분쯤 소련 최초의 비밀경찰을 조직한 폴란드출신 제르진스키의 철제동상에 「파시스트」라는 슬로건을 적어넣고 목부분을 쇠사슬로 묶은뒤 버스에 연결,지상으로 끌어내리려 했다.
○…80년 가까이 소련 공산당기관지로 발행돼 왔던 프라우다지가 23일부터 일반신문으로 변신한다.
영국 BBC방송은 22일 프라우다지는 「소련 공산당중앙위 기관지」의 기치를 버리고 일반 정치신문 노선을 걸을 것이라는 이 신문 편집국장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한편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신문 편집국기자들은 22일 기자총회를 열고 니콜라이 예피모프 편집국장에 대한 해임결의안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기자들은 쿠데타 기간중 개혁파 신문인 이즈베스티야가 정간당하지 않은 이유가 예피모프가 쿠데타세력에 기여했기 때문이라면서 그를 해임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22일 기자들에게 『연금기간중 강압에 의해 타협하느니 차라리 자살하려 했다』고 당시의 고통스러웠던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자신과 그의 가족들은 독살을 우려,이미 확보된 음식만으로 식사를 해결했다고 말했다.<외신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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