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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4493 제86화 경성야화-28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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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문화운동 융성기
앞서 말했듯이 3·1독립운동이 우리들에게 준 가장 큰 공적은 우리들을 문화적으로 크게 깨우치게 한 점이었다.
이 만세운동 이후로 「아는 것이 힘」 이라며 향학열이 불길처럼 일어났고 여러가지 문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민간신문에 이어 많은 잡지와 도서가 출판되었다.
천도교에서 발행하는 종합잡지『개벽』 을 비롯, 문예잡지『폐허』가 오상정·염상섭· 변영노 등을 중심으로 발간되었고 학생잡지 『학생계』, 부인잡지 『부인』, 소년잡지 『어린이』, 영화잡지 『예원』 등이 잇따라 발간되었다.
조선사람은 조선물건을 써야한다는 우리것 애용운동이 평양에서 먼저 일어나 서만식·오윤선 등이 1920년에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하고 이어 서울에서 1923년 전조선 규모의 새로운 「조선물산장려회」가 창립되었다.
두루마기를 입고, 국산으로 짠 양복을 해 입는 운동이 한때 전국에서 크게 일어나고 있었다.
천도교의 방정환은 1921년「천도교소년회」를 조직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소년운동의 첫 출발이었다. 여기서·5월 첫째 일요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이날을 어린이들의 명절로 삼았다.
이날은 어린이들의 시가행진과 각종 놀이가 있어 민족의 새싹인 어린이를 존중하는 의식을 심어주게 하였다. 여기서 발행하는 잡지 『어린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생명이 긴 잡지가 되었다.
소년운동과 병행해 1922년 중앙학교 교사로 있던 조철호가「소년척후단」을 조직하여 우리나라 보이스카우트 운동의 첫발을 내디뎠다.
소년척후대는 화려한 복장으로 종로일대를 누벼 서울의 명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동아일보사에서는 1923년에 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선수로 하는 제1회 여자정구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는 우리나라 최초로 열린 공개 여성 스포츠 대회여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제1회에서 개성 호수돈 여자고등보통학교 팀이 우승을 거둬 집안에만 박혀있던 규중 처녀들의 발랄한 모습과 아리따운 자태가 뭇 남성들의 시선을 끌었고 이 대회가 해마다 열리게 되면서 더욱 인기를 더해갔다.
여자정구대회가 열린 직후 종로청년회관에서 여류성악가인 윤심덕과 한기주의 성악발표회가 열려 서울사람들은 처음으로 노래가락이 아닌 서양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윤심덕은 그 뒤 일본에 가 성악을 더욱 연마하여 명성을 그게 떨쳤지만 3년뒤인 1926년8월 청년극작가 김우진과 현해탄을 건너는 관부연락선에서 투신 자살해 물의를 일으켰다.
남녀의 동반자살을 「정사」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음악에서뿐만 아니라 그림에 있어서도 여류화가가 나왔다.
그 전해인 1922년 조선총독부 주최로 열린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여류화가 나혜석이 출품한 서양화 『농가』 와 『봄』 이 당당히 입선되었고 그후 나혜석은 제3회인가 4회때 『낭랑묘』로 특선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에서 그림을 공부했는데 『낭랑묘』 는 만주 안동현에 있는 중국 여인의 사당을 그린 것으로 매우 인상적인 그림이었다.
그 당시 이 전람회는 저동에 있는 상품진열관에서 열렸는데 학교에서는 해마다 학생들에게 이 전람회를 관람시켰다.
미술전람회는 총독부 주최였지만 이에 앞서 1921년4월 계동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는 춘곡 고희동이 주관하는 서화협회 주최로 서화협회 전람회가 열렸었다.
이것을 「협전」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총독부의 「선전」 과는 달리 조선사람 서화가를 중심으로 한 민간단체의 미술전람회였다.
이 협전을 보고 크게 놀란 총독부는 관변에서 주최하는 서화전람회를 개최하려고 서두른 끝에 그 이듬해인 1922년 총독부 주최 미술전람회를 열게 된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경성제국대학의 개교를 들수 있다.
1920년 한규설 등이 조선교육회를 설립하였는데 이를 모체로 1922년 11월 조선민립대학 기성 준비회가 조직되었다.
사무소를 종로청년회관에 두고 이상재를 준비위원장으로 하여 활발한 모금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을 본 총독부는 민간에서 계획하는 대학건립에 앞서 국립대학을 설립하려고 서두른 결과 1924년5월 마침내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개교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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