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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의 앞날(고르비 없는 소련: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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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족의식 고양… 물리적 결속엔 한계/분열방지 명분뿐 뾰족한 수단 없어/세계질서 재편에 큰 영향
소련 사태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의 관심은 소연방체제의 장래와 이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지방공화국들의 태도에 집중되고 있다.
신연방조약안 체결을 거부,분리독립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발트해 3국·그루지야·아르메니아·몰다비아등 6개공화국이 어떤 행동을 벌일 것이며,이에 대해 쿠데타지도부인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앞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발트해 3국은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그들의 민선정부를 제거할 것에 대비,망명정부 조직 책임자들을 임명했다.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19일 필요하다면 지하저항운동도 불사하겠다며 독립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또한 당초 신연방조약에 조인할 예정이던 카자흐공화국·우크라이나공화국도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모든 결정은 무효임을 선언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러시아공화국 영토내의 군·국가보안위원회(KGB)를 포함한 모든 국가조직은 자신의 명령을 따라야할 것이며,그렇지 않을 경우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같은 사태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위기에 처한 국가의 운명과 연방분열방지라는 명분을 크게 위협하는 것이다.
이미 민족의식이 고양될대로 고양된 가운데 탈연방의 기치를 높이 세운 분리공화국들을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어떤 방법으로 설득,혹은 강제해 연방을 유지할 것이냐는 문제는 단순히 소련내부 문제만은 아니다.
소연방 구조의 미래에 대한 이들의 복안은 앞으로 쿠데타가 성공하든,실패하든 필연적으로 제기될 소련내에서의 권력재편과 유럽안보체제,넓게는 세계질서의 재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15개공화국과 1백여 민족으로 이루어진 소연방의 통합 유지·발전은 더이상 과거와 같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계급개념이나 이에 기초한 중앙집중적인 공산당 단일체제,시대에 뒤떨어진 20년대의 연방법으로는 유지가 불가능한 상태다.
현재와 같이 독립열기가 높고 민족의식이 팽배한 분위기에서 과거와 같은 낡은 연방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전이나 전면적인 탄압·유혈사태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연방체제의 불안정성이 해소되거나 어떤 새로운 돌파구가 제시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 소련체제의 상징이었던 전체주의는 소련국민들의 불신으로 해체단계에 직면해있다.
설혹 전체주의를 강압적으로 도입한다 하더라도 소련지도부는 이를 뒷받침할 물리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만 한다.
또한 서방측으로부터 압력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소련은 또다시 군비경쟁과 핵의 위협에 의존하는 신냉전과 고립의 시기를 거쳐야만 한다.
그러나 현재 소련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난과 지난 6년5개월동안 지속된 개혁의 결과는 소련국민들이 이러한 식의 통치를 허용하지 않을 민주주의·다원주의·시장경제체제의 매력과 기반을 상당부분 형성시켰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자치허용이라는 「당근」과 연방이탈은 곧 파멸이라는 「채찍」으로도 분리공화국들을 설득하지 못한채 결국 15개 연방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며 포괄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신연방조약안을 작성했던 이유도 이러한 점에 기인한 것이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지난 4월말 러시아공화국등 다른 9개 지방공화국과 신연방조약안에 합의한후 『중요한 것은 드디어 우리가 합의에 도달했다는 것』이라며 몹시 감격해 한바 있다.
그러나 보수파들은 고르바초프가 소연방을 무력이 아닌 자발적인 결합력으로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으로 생각했던 신연방조약안을 소련을 해체시키기 위한 「극단파들의 음모」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이들은 현재의 연방헌법이 모든 법률은 물론 각 공화국헌법에 우선함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경고가 연방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지만 밑바닥에는 러시아 민족주의라는 민족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고도 분석하고 있다.
즉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후 소련사회내에 형성된 소수민족의 자아발견 및 민족주의 열기에 밀려 상대적으로 손해를 봐온 러시아 민족주의가 현 연방체제 고수라는 명분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사태이전 전문가들이 소연방체제의 장래모델로 상정했던 ▲연방이 해체되고 7∼8개의 민족국가가 탄생할 가능성 ▲현행 개혁세력이 전면적으로 퇴진한 채 신전체주의로 회귀,끊임없는 혼란과 내전이 지속될 가능성 ▲신연방조약의 조인으로 인한 자발적인 국가연합체로의 발전가능성중 가장 유망했던 가능성이 사라진채 첫번째나 두번째의 가능성이 점점 커져가는 상황이다.<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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