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기자의 뒤적뒤적] 그 나이는 이런 나이…가슴 찌르는 말말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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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마이 라이프

네티즌 글.사진

은행나무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도, 결혼을 도피처로 삼기도 어정쩡한 나이다." 여성인 듯 싶은데 몇 살의 한탄일까요?

"결혼을 하기에는 아직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고 일을 좇기에는 내 곁에 있는 이 사람 놓치기 싫다." 남성이라면 몇 살의 망설임일까요?

각각 26살의 여성, 29살의 남성이 자기 나이를 정의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재기가 넘치는 것이 "아, 그래, 맞다. 내 얘기야" 하며 절로 무릎을 치게 하지 않습니까?

출판사에서 나이별로 고민이나 한탄, 감회를 짧은 글로 정리해 볼 생각을 했더랍니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마이 북 이벤트'를 개설해 네티즌들의 글을 공모했다지요. 무려 3만 명이 넘는 네티즌이 참여했다는군요. 그런데 아무래도 나이가 들수록 컴퓨터와 멀어지는 때문인지 고령에 관해서는 적절한 글이 드물어 따로 사이버 동호회를 찾아 글을 모았답니다.

이렇게 해서 한 살부터 백 세까지 나이마다 웃음을 자아내거나 코끝이 찡한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 이 책입니다. 여기에 네티즌들이 직접 찍은 사진을 골라 곁들였으니 그야말로 보통사람들의 협업으로 탄생한 '우리 시대 자화상'이란 점에서 일단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 살의 독백부터 들어 볼까요? "하루의 대부분을 꿈만 꾸며 지내는 나이"라며 잠자리에 든 아기 발 사진을 실었습니다. 절로 미소가 나와 책장을 넘기니 두 살의 '인생 찬가'도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방긋 웃기만 해도 거리에서 처음 만난 아줌마가 예쁘다고 과자를 쥐여준다"라나요.

안쓰러운 하소연도 있습니다. "열일곱은 꿈을 키울 나이고, 고1은 꿈을 접을 시기다"라는 짧은 글에는 미처 헤아리지 못한 고민을 엿보았답니다.

그러다 불혹을 넘어가면 진중해집니다. "자라나는 자식들을 보며 새삼 부모님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나이" 딱 마흔 살의 고백입니다. 바로 옆에 자리한, 부자 계단에서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는 사진이 정겹게 보입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면서 로또는 꼬박꼬박 산다"거나 "건강에 좋은 것이라면 귀가 번쩍 뜨인다"는 44살의 얘기는 "과연"이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날카롭습니다.

이것이 내용의 전부가 아닙니다. "질병도 삶의 일부가 되는 나이"란 71세엔 최고령 새내기 대학생 곽계수 할머니가, "일흔다섯 살이 되는 일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일흔다섯 살로 취급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자신을 일흔다섯 살로 여기는 것이다"엔 19세 소녀에게 청혼했다 거절당한 괴테가 등장합니다.

젊은 날을 돌아보거나 나이 든 뒤의 심정을 짐작하기 위해 들춰볼 만한, 이 재미난 책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괴롭고 쓰라린 것부터 행복하고 화려한 것까지 추억의 페이지에선 같은 색깔의 필름으로 기록된다. 그러므로 나이를 먹는다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여행이었다"라고.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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