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상장사 부도|투자자 손실 배당 싸고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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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의사의 오진에 대한 소송은 이제 종종 있는 일이다. 또 행정 잘못의 책임을 묻는 집단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심심찮게 매스컴을 탄다. 같은 이치로 최근의 증시 상황과 관련, 증권사나 회계법인의 기업부실 분석에 따른 투자자들의 손실은 누가 배상해야하느냐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논의는 물론 최근 잇따르고 있는 상장사 부도사태 때문.
지난해 9월 대도상사의 파산을 시작으로 지난 4월에는 금하방직, 7월에는 아남정밀·흥양·기온물산 등 최근 10개월 사이 모두 5개 상장회사가 부도났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특히 지난 2월9일 증시에 처음 상장됐다가 6개월도 채 안돼 지난달 27일 부도를 낸 기온물산의 경우 ▲공개 주간사 회사가 국내 최대의 증권사인 대우증권이고 ▲회계감사를 맡은 곳이 국내 굴지의 회계법인인 청운회계법인이며 ▲특히 증권감독원이 부실 공개를 막기 위해 「공개 전 실질심사」까지 마쳤었다.
증권사의 기업분석이나 공인회계사의 회계감사, 증권감독원의 실질심사 모두의 신뢰도에 기온물산의 경우 심각한 타격을 준 것이다.
대우증권은 당초 기온물산의 공개주간사를 맡으면서 올해 매출액을 3백50억원, 경상이익은 18억4천만원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기온은 공개 5개월여만에 침몰했고, 당시 기온물산의 주식을 갖고 있던 투자자는 8천1백여명이였다.
회계법인이나 증권사가 기업분석·회계감사를 잘못해 문제가 생기면 증권감독 당국에 의해 사후적인 제재 (예컨대 최고 2년까지 공개주선업무금지)를 받게 되어있다. 하지만 부실기업분석으로 부도가 났을 때 투자자들이 본 손해를 구제해주는 손해배상청구소성 등의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이 같은 장치를 활용하는 「관행」은 없었다.
현재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17조2항에는 「외부 감사인이 감사기록을 고의로 누락시키거나 허위로 기재, 제3자에게 피해를 끼쳤을 때 배상책임을 진다」고 규정돼있다.
감사인은 이 같은 손해배상책임에 대비, 보험에까지 들게돼 있으나 우리나라에선 아직껏 이 같은 보험이 아예 개발되지도 않았다.
또 증권거래법 (14, 15, 97조)에도 외부 감사인이 유가증권 신고서나 사업보고서를 허위로 기재했거나 회계감사를 엉터리로 해 투자자가 손해를 봤을 때는 당사자가 배상책임을 지도록 규정해놓았다.
이때 공인회계사가 잘못됐다고 입증할 책임은 투자자들이 진다.
그러나 부도 등 큰 문제가 터졌을 때는 증권감독원이 그 기업과 공인회계사에 대해 특별 감리를 실시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얼마든지 입증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예컨대 대도상사를 감사한 청운회계법인의 경우 작년에 대도의 89년 회계장부를 들춰보고 별 다른 문제가 없다며 「걱정」의견을 내놓았었다.
막상 대도상사의 부도 후 증권감독원이 특별감리를 한 결과 대도측은 ▲32억원의 부채를 장부 처리치 않고 ▲S물산에 진 16억여원을 역시 장부에 올려놓지 않았으며 ▲재산을 과대하게 평가하는 등 엉터리로 회계처리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청운회계법인도 이를 바로잡아주지 않았다. 결국 부실감사를 한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이에 대해 김귀영 대우증권 기업분석부장 (공인회계사)은 『중소기업의 경우 재무상태가 수시로 급변, 공개당시에는 설사 양호했다하더라도 무리한 시설투자 등으로 얼마 안 있어 자금사정이 악화돼 비틀거리기도 한다』며 『기온물산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말한다.
부실분석의 책임을 외부감사인이 모두 지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는 지적인 것이다.
부실분석으로 인한 투자자들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는 제재나 소송 등 사후적인 조치도 중요하지만, 기업평가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고 또 평가의기초가 되는 결산서·감사보고서를 처음부터 믿을 수 있게 작성하는 등 사전적인 조치가 더 중요함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기업 신용등급의 평가에 따른 금리 차등화를 정착시켜나가고, 또 내년부터 자본시장이 열려 외국의 투자가들과 상대하려면 기업분석과 기업평가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은 더 할 수 없이 시급한 발등의 불이다.

<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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