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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세력은 착각하고 있는가(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5공세력의 핵심인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2000년대를 대비할 「창조적 정당」을 만들어 14대총선에서 심판을 받겠다고 나선 것은 그 발상의 동기나 성사여부를 떠나 뭔가 시대착오적인 일이 도모되고 있지 않느냐는 느낌을 준다.
장씨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5공세력이 만들려는 정당은 「정치우위 사회라는 현실적 모순을 극복」하는데 명분을 두고 있으며 동기의 저변엔 6공정부에 대한 불만과 도전,5공의 명예회복 의도가 짙게 깔려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장씨와 연희동세력이 과연 2000년대를 대비하는 정당을 만들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그런 정당이 그들에 의해 만들어져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예단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울러 그들이 이같은 발상을 하기까지의 사고과정과 노태우 정부에 대해 갖고 있는 사적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바탕위에서 사태를 보고자 한다.
그럼에도 장씨의 문제인식과 지향노선에는 명백한 착각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장씨는 5공청산과 그로 인한 전두환씨의 명예손상,자신의 복역 등이 주로 노태우 대통령의 의리파기 때문에 기인한 듯이 말하고 있다. 노­김간에 「깊숙한 인간적 약속과 역사에 대한 기약」이 있었다느니,6·29선언이 노대통령의 독자적 결단이 아니라는 암시같은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는 노­전간의 깊은 조약의 실상을 알지 못한다. 진실이 장씨의 주장대로라면 노대통령의 전씨에 대한 인간적 처신에는 당사자의 주관적 판단에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 점은 40년 우정을 맺어온 두사람 개인사이에 해결할 과제다.
그러나 장씨는 문제의 근본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5공청산문제가 빠른 위상정립을 노린 노대통령의 정략이나 단순한 언론플레이로 인해 그토록 확대되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광주사태,획일적 권위주의 체제의 강요,친인척비리 등 5공은 한바탕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고는 무사하기 어려운 여건을 마련했고,그래서 여소야대하에서 가장 큰 책임이 전씨와 그 측근에게 추궁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때문에 이제와서 5공문제가 6공의 음모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시각을 갖고 의리론으로 반격하는 것은 국민정서에 맞지 않을 뿐더러 그들의 대의 추구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본다.
노­전의 사적감정은 그것대로 해결되어야 한다.
끝으로 우리는 장씨가 정말 「전두환당」이 가능하리라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정당을 만들려면 우선 국민지지의 공감대가 있어야 하고,자금과 조직으로 당선가능 인사를 대거 포섭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오갈데 없는 5공세력을 모아 거액의 선거자금을 쓰면 5공비리를 확인시켜 주는 효과밖에 줄 것이 없을 것이다.
개인간의 감정문제가 국사를 논해야 할 정치활동의 중요 동기가 되는 것은 국민편에서 볼때 용납하기 어려운 환상이다.
5공세력은 5공청산에 아직도 미흡함을 느끼고 있는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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