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 500년은 기본 … 장수 가족기업의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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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세계 장수기업, 세기를 뛰어넘은 성공

윌리엄 오하라 지음

주덕영 옮김, 예지

432쪽, 1만9700원

책을 읽다보니 넥슨 창업주 김정주의 말이 생각난다. "30년 이상은 버텨야겠죠." 3년 전 인터뷰에서 한 얘기다. 부침(浮沈) 심한 게임업계에서 오래 살아남겠다는 뜻이다. 넥슨은 카트라이더로 유명한 게임업계 선두. 요즘도 승승장구한다. 30년이 아니라 100년도 문제없을 듯하다. 동대문시장에 있는 축구용품 유통회사 싸카스포츠도 떠오른다. 이 회사 조직표를 보면 꽤 재밌다. 다섯 형제 부부들이 사장.이사.대리들이다. 넥슨은 장수를 희망하고, 싸카스포츠는 가족화합을 자랑한다.

이 책은 장수를 누리는 세계의 가족기업 20곳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수명이 장난이 아니다. 500년은 기본. 비록 지난해 소유권이 바뀌었지만 일본의 건축회사 콘고구미(金剛組)는 1400여 년을 뽐냈다. 포도주의 명가 안띠노리는 600년을 훌쩍 넘겼다. 007 제임스 본드의 권총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총기제조사 베레따. 1526년에 탄생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두산그룹(1896년 박승직상점으로 출발)은 이제 110살이 막 지났을 뿐인데.

지은이에 따르면 가족기업은 장수할 가능성이 크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경영에 간섭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사업에 남다른 정열을 갖고 있다는 이점도 있다. 그렇다고 장수기업들이 가족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가족보다 회사가 우선"이라며 외부 인사를 경영자로 영입했다. 작가는 말한다. "누군가가 나보다 뛰어남을 인정하는 것 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누군가가 내 회사를 더 잘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그럼에도 이 책은 가족기업의 중요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저자 자신이 가족기업사 전문가다. 그는 "가족들은 서로 믿고, 미래의 자손까지 생각한다. 이것이 가족기업이 오래 견디는 이유"라고 분석한다. 신뢰와 비전이 장수조건이란 얘긴데, 지배구조가 어떻게 돼있던 간에 기업생존의 필수요소가 아닐 수 없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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