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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힘, '깊은 침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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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의 이름은 토머스 에디슨이다. 그는 19세기에 발명을 통해 20세기적 삶을 창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었다. 그런데 그로 하여금 미래를 열게 만든 힘의 근원은 역설적으로 스스로를 가둔 채 실험에 몰두했던 그의 '깊은 침묵'이었다.

에디슨 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천재는 1%의 영감(靈感)과 99% 노력의 산물"이 그것이다. 물론 그에겐 창조성을 격발시키는 1%의 영감도 있었고, 백열전구의 필라멘트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300여 가지가 넘는 재료로 줄기차게 실험하는 99%의 노력도 있었다. 하지만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것은 그 1%의 창조적 영감도, 99%의 부단한 노력도 모두 그의 '깊은 침묵'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에디슨은 '깊은 침묵' 속에서 번뜩이는 영감을 발견했다. 또 실험실 문에 스스로 자물쇠를 걸어놓는 '깊은 침묵'을 감행했기에 그 많은 발명을 해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19세기와는 전혀 다른 20세기가 열릴 수 있었다. 에디슨의 '깊은 침묵'이 창조적 발상과 발명을 가능케 해 새로운 미래를 연 것이다.

17년 전인 1990년 2월 11일 1만여 일 동안의 수감 생활을 끝내고 옥문을 나선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넬슨 만델라다. 그는 본래 변호사였다. 하지만 극심한 인종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기꺼이 무장폭력단체의 투사가 됐다. 그런데 그는 투쟁과 대립보다 화해와 용서가 더 값지다는 것을 감옥 안의 '깊은 침묵' 속에서 깨달았다. 그런 깨달음을 통한 마음의 평화가 그로 하여금 로벤 섬, 폴스무어 등 악명 높은 감옥에서 27년을 버틸 수 있게 만들었다. 저주와 한탄과 울분과 분노, 그리고 그것들이 응어리진 오기로는 1년도 채 못 버텼을 게다.

넬슨 만델라는 오랜 감옥 생활을 통해 '자유로의 긴 여정'을 준비했다. 그는 감옥이란 '깊은 침묵'의 시공간에서 반목과 질시, 대립과 투쟁의 악순환이 질곡처럼 펼쳐진 20세기를 끝장내고 용서와 화해 그리고 다시 하나 되는 21세기를 꿈꿨다. 거기서 그 꿈을 실현해 낼 힘을 비축했다. 그는 20세기 절망의 감옥에서 21세기 희망의 미래를 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에게 덧씌워진 노벨평화상의 수상 경력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을 지냈다는 이력 때문에 때로 그의 진정한 힘의 근원인 1만여 일 동안의 '깊은 침묵'을 잊곤 한다.

선승(禪僧)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공양구(밥구멍) 하나 내놓고 사방이 벽으로 둘러쳐진 방에서 오직 화두(話頭) 하나 든 채 참선한다는 '무문관(無門關)' 수행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도 그것이 필요하다. 번드르르 말만 앞세우지 말고, 채 숙성되지 않은 장독의 뚜껑을 미리 열어 사람들의 입맛 버리지 말고, 단 한 번이라도 '깊은 침묵'을 바탕으로 해서 미래를 열어가는 모습을 이 땅의 지도자연(然)하는 사람들에게서 보고 싶다.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는 것이다. 미래는 기다림의 대상이 아니라 오늘 내가 하는 만큼 만들어지는 창조의 대상이다. 나의 시선과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진다. 하지만 그 미래를 여는 진짜 밑둥아리 힘은 다름 아닌 '깊은 침묵'에 있음을 잊지 말자.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