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책 뒷북만 치는 민자/정선구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권싸움에 민생이 병들고 있다는 지적이 높게 일고있는 가운데 「정책정당」을 표방하고 있는 민자당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채 표류하고 있다.
민자당은 13일부터 이틀동안 ▲무역수지대책 ▲92년 예산심의 ▲수해대책 당정회의를 가졌으나 대권논쟁·의원외유·휴가 등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지 못한채 정부정책의 뒷북이나 치는 「정책부재현상」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총선을 앞둔 선심성 팽창예산이라는 정부예산을 원안대로 통과시키는가 하면 미흡한 정부시책에 대안제시도 못하면서 당정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뒤늦게 정부를 성토하다가 망신을 당하는 등 좌충우돌이다.
이처럼 민자당이 부산을 떠는 것은 지난 9일 노태우 대통령이 『당이 일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라』는 지시에 따른 것.
그러나 그동안 「농어촌구조개선안」외에는 이렇다할 정책개발 없이 정부시책에 끌려다니며 「당정 밀월시대」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아오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민생정국」에 시차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14일 열린 예산당정회의만 하더라도 몇가지 형식적 비판만 개진한뒤 전년대비 23% 증가한 33조1천8백50억원 규모의 92년 예산의 정부원안을 그대로 추인해 당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23% 증가는 경제적 과도기였던 지난 82년의 기록적 예산증가율 22.2%를 뛰어넘는 10년만의 최대 팽창예산.
나웅배 정책위의장은 『총수요관리 측면에서 재정긴축이 절실하다』고 지적하고도 『정부 예산규모는 전년 본예산대비 23% 증가지만 추경을 포함한 전체규모에 비해서는 5.7% 증가에 불과하다』는 정부측 논리에 동의했다.
민자당은 『각종 선거와 6공사업 마무리를 위해 예산삭감은 어려울 것』이라며 조정의지를 보이지 않은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총선에 대비해 지역사업예산을 늘려달라고 치열한 로비까지 벌여 오히려 예산증액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고속도로통행료와 휘발유 특소세 대폭 인상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로부터 일격을 당한 민자당은 이에 대한 사전준비도 않고 있다가 뒤늦게 정부 성토의 목소리만 높였다.
서상목 정조실장은 『당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라며 볼멘소리로 철회를 요구했으나 결국 『이미 발표해 곤란하다』는 정부측 답변 한마디로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당이 아무런 정책대안도 없이 놀고 먹으면서 정부눈치나 본다면 정부측이 당을 우습게 알 수 밖에 없다. 그게 집권 민자당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