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상품도 독점권 보장을〃|은행가 ″특허인정〃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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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은행예금이나 보험상품이 특허를 땄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올 들어 재무부가 참신한 보험상품이 개발만 되면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1년간 「개발이익」을 보장해주는 제도를 도입하고, 또 최근 각 은행이 거의 똑같은 예금상품을 경쟁적으로 「모방」하는 금융상품 난립전이 벌어지자 금융상품에도 일정기간 「특허 아닌 특허」를 인정해야한다는 논의가 강하게 일고있다.
이같은 쟁점을 들고 나오는 쪽은 당연히 최근 히트한 예금상품을 가장 먼저 내놓았었던 은행들이다.
이들은 생명보험도 올부터 신상품으로 인정될 경우 1년간 다른 회사의 참여를 배제시키는 제도가 신설되었으니, 은행권에도 이같은 제도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흥은행 신탁부 상품개발팀(팀장 박내정차장)은 지난 5월하순 「노후복지신탁예금」이란 새 상품을 개발했다.
이 상품은 기존의 노후생활연금신탁을 기본 틀로 삼되 이자를 매월 지급하는 참신한 방식을 도입했다.
신탁예금과 같이 운용실적에 따라 이자를 주는 실적배당상품은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한꺼번에 지급하는 것으로만 인식돼왔는데 조흥은은 그같은 「고정관념」을 깨고 일단 年12%의 이자를 매달 주기로 했다.
자신있는 운용수익(연12%)은 매달 고객에게 주고 그 이상으로 생긴 이자(현재 연1.7%선) 는 원금에 가산, 복리로 불려 주기로 한 것이다.
조흥은행팀은 이 상품의 개발을 위해 약5개월의 시간을 투입했으며 재무부승인을 받아 지난 6월26일부터 시판에 들어갔다.
그러나 불과 닷새후인 7월1일부터 외환은행이 이 상품을 모방한 노후안심신탁을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8월부터는 상업(한아름 열매신탁) 부산(노후보람신탁) 광주(광은이체신탁)은행 등이 잇따라 뛰어 들었다.
이같은 예는 지난 3월에도 있었다. 당시 상업은행은 세금우대 정기예금의 이자를 정기적금에 다시 넣어 연수익률이 국내은행상품 중 최고인 14.15%인 「한아름골드예금」을 개발, 4월1일부터 시판했다.
그러자 한달 뒤부터 서울신탁은행을 비롯해 국민·외환·한일·제일은행, 농협등이 같은 골격에 단지 부대서비스만을 조금씩 달리한 상품들을 쏟아냈다.
상품을 먼저 개발한 은행측은 이같은 상황이라면 인력·시간·돈을 들여 애써 신상품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신상품 개발의욕을 북돋워 금융기관간 선의의 경쟁을 촉발시키기 위해서라도 먼저 개발한 은행에 대해 일정기간 개발이익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조흥은행측은 노후복지신탁을 개발한 후 단 6개월만이라도 다른 은행의 참여를 금지시켜 달라고 재무부에 요청했으나 『일리가 있다』는 말만 듣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금융상품에서는 「특허」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측은 거주지역에 따라 금융상품이용권이 제한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허」 상품을 파는 은행지점이 개설돼 있지 않은 지역의 사람들은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생명보험상품에는 이같은 「특허」가 인정되고 있다.
재무부는 생명보험상품 개발지침에 근거를 두고 올1월1일부터 신상품으로 판정받을 경우 그 보험사에 1년간 개발이익을 독점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신상품을 개발한 보험사가 이같은 권리를 인정받고 싶다고 신경하면 「생보신상품 심의위원회」(위원장은 8명의 위원중 보험학회장이 추천한 1인)가 이를 심의, 판정을 내려준다.
심의기준은 상품의 담보위험·판매대상·보장내용 등이 얼마나 획기적인가, 또 보험계약자의 권익을 얼마나 향상시키느냐는 것인데 8명의 위원 중 3분의2이상의 출석에 3분의2의 찬성을 얻어야 비로소 「특허」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 심의위는 8개월째 한건의 신상품도 심의해 본적이 없다.
개발한 회사측이 스스로 신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적다고 보고 아예 신청을 안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생보업계에 이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점을 들어 은행권에도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꼬리를 물고있다.
이에 대해 은행감독원 관계자는 『이같은 문제는 당국이 관여하기보다는 업계에서 심의기구를 만들어 자율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똑같은 상품을 너도나도 신상품이라고 선전, 고객들을 혼란tm럽게 만드는 일은 감독당국이 나서서 자제시킬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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