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 5배로 키운 비결요? 교류와 소통이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세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싶어하는 한국박물관협회 김종규 명예회장. [사진=최승식 기자]

"사람들 사이에 답이 있어요, 모든 문제가 사람을 만나 생겨나고 사람을 만나 풀리는 거잖아요."

한국박물관협회 회장을 8년간 연임하다 5일 퇴임해 명예회장으로 추대된 김종규(68)씨. '문화계 마당발''교제의 달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그가 말하는 '소통의 리더십'이다. 재임 기간 동안 한국박물관협회의 규모를 5배로 키워낸 비결이기도 하다. "어디 협회 일만 그런가요, 리더가 할 일이 뭐요, 교류와 소통 아닌가, 창조적 아이디어도 그런 만남 속에서 나온다고 봐요."

그가 제3대 회장을 맡던 1999년 당시 협회의 회원 기관은 100여 개에 불과했다. 그것도 사립 박물관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회원 기관이 500여 개로 늘었다. 게다가 국립중앙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 등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이 모두 회원으로 가입하며 위상이 크게 강화됐다. 협회를 박물관인들의 핵심적 커뮤니케이션 통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2003년에는 미술관과 과학관, 그리고 백범기념관.도산안창호기념관.전쟁기념관 등 각종 기념관까지 회원으로 아우르게 됐다. 협회의 성장과 함께 협회장으로서 그의 역할도 커져 갔다. "2004년 서울에서 아시아 최초로 열린 세계박물관대회(ICOM)의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일, 2006년 서울 용산에 새로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의 개관추진위원장을 맡은 일이 특히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 박물관 얘기를 빼놓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8년은 그렇게 협회의 기반을 다지는 기간이었어요. 박물관은 모든 교육의 출발입니다. 이제 세계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높은 박물관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는 문화계의 감초로 통한다. 박물관계.미술계.출판계.서지학계.종교계.연극계 그리고 다도(茶道) 모임 등 각종 행사의 단골 인사다. "내가 빠지면 사람들이 허전하다고 합디다, 아마 축사나 축배 제의는 문화계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다음으로 내가 많을 거요…."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소통의 윤활유 역할을 김씨는 즐긴다. 풍류객을 자처하는 그의 타고난 낙천적 기질도 있을 터이다. 무엇보다 60년대부터 장형이 운영하는 삼성출판사에서 '작은 사장'으로 통하며 오랫동안 쌓아 온 두터운 인맥이 가장 큰 자산이다.

그가 주인인 삼성출판박물관은 '김종규 살롱'으로도 불린다. '삼성출판박물관 아카데미'라는 모임을 만들어 매주 수요일 명사 초청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김충렬 전 고려대 교수의 동양철학, 김상현 동국대 교수의 삼국유사, 이인호 전 러시아대사의 러시아사 강의 등이 인기 강좌였다.

그의 풍류를 짐작해볼 수 있는 일화 하나. 그보다 4살 위인 중광 스님이 아직 걸레 스님으로 크게 유명해지기 전인 76년의 일이다. 당시 통도사 박물관장이던 중광 스님과 서울에서 열린 민중박물관협회 창립 총회에서 처음 만나 함께 술까지 마시게 됐다고 한다. "제 운전기사더러 스님을 숙소까지 모셔드리게 했지요. 그런데 한강 다리를 건너다 갑자기 스님이 차 안에서 방뇨를 했답니다. 세차까지 하고 늦게 온 기사로부터 그 얘길 듣고 그랬어요, '화장실 딸린 자동차 봤는가, 내 차는 벤츠보다 더 좋은 벤소다.'스님이 나중에 그 얘기를 전해듣고 다시 연락을 주셨기에 이후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됐지요."

김수용 감독의 영화 '허튼 소리'(1987)에 나오는 중광 스님이 택시에 방뇨하는 장면은 자신의 '벤소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효당 최범술 스님과 구상 시인을 평생 잊지 못하는 '교류와 풍류의 스승'으로 꼽았다. 효당 스님은 그에게 차(茶)의 맛과 불교의 깊이를 가르쳐 주었고, 20년 연상의 아버지뻘임에도 구상 시인은 자신을 친근하게 대해주며 형이라고 부르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제 협회의 명예회장으로,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그의 '박물관 사랑'은 계속된다. 그의 후임으로 한국박물관협회장에 선출된 배기동(55) 한양대 박물관장은 "본래 뮤지엄이라 하면 박물관.미술관.기념관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라며 "김종규 명예회장이 협회를 협회답게 만드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글=배영대 기자<balance@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