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수 안 밝히는것이 관례/금일봉(정치와 돈:6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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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수만원부터 천만원대까지 다양(주간연재)
민자당의 김영삼 대표·박태준 최고위원은 지난달 22일과 26일 각각 용인·안성일대의 수해지구를 방문,수마로 큰 피해를 본 수재민들을 위로하면서 「금일봉」이라고 적힌 흰봉투를 지구당과 대책본부 관계자들에게 전달했다.
이때 김대표·박최고위원이 낸 금일봉의 액수는 각각 5백만원씩.
이처럼 정치이들,특히 고위층 인사들은 성금이나 기부금 또는 격려금을 금일봉이란 형식으로 전달한다.
각 언론사에서 수재의연금·불우이웃돕기성금모금 등을 주관할 때도 이들은 액수를 밝히지 않는 금일봉으로 전달하는 것을 관례로 삼고 있고,언론도 고위인사들을 예우해 액수를 밝히지 않은 채 접수사실을 금일봉으로 보도하고 있다. 굳이 액수를 밝히지 않는 금일봉의 관행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확실치 않다.
최고위원들의 자금담당 측근들은 『우선 액수를 밝히지 않아도 되므로 신분에 비해 다소 소액이거나 지나친 거액이라 하더라도 신경쓸 일이 없다』며 금일봉 선호이유를 들고 있다.
이들은 또한 『금일봉이란 어휘 자체가 풍기는 맛이 경박하지 않은데다 자칫 돈문제로 체면이 크게 손상돼서는 안 된다는 우리 고유의 선비정신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고 풀이했다.
금일봉이 이같이 신비한 마력을 지니다보니 여야 고위정치지도자들은 이를 유효적절히 써먹는다.
실제로 작년 수해가 극심했을 당시 신문·방송 등 언론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수해의연금을 모금하자 김영삼·김대중씨 등은 의연금 금일봉을 수십만원씩으로 쪼개 전언론사에 전달,체면을 세워줬다.
두 김씨는 특히 수재의연금 또는 선행격려금을 서로 먼저 내려는 경쟁의식도 드러내 측근들이 때로는 곤욕을 치르기도 하며 상대방 또는 대통령의 금일봉 단위에도 신경 써 측근들이 염탐탄전을 벌이기도 한다.
여당 정치지도자들의 금일봉은 크게 당공식루트를 통해 나가는 「공금형」과 개인적으로 내는 「사비형」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민자당은 올해 8월 현재까지 약 3천만원의 당공식경비인 「공금형」 금일봉을 지출했는데 이는 ▲최고위원급 ▲사무총장급 ▲지구당위원장급등 세가지 등급명의로 구분된다.
즉 ▲김대표·박최고위원명의의 수해지구 지원금 각 5백만원씩 1천만원 ▲물에 빠진 형제를 구하고 자신은 파도에 휩쓸려 숨진 군인과 무단횡단하던 할머니를 구하려다 숨진 건널목 안내원에게 각 1백만원씩 2백만원(김윤환 총장명의) ▲수해피해정도에 따라 A·B·C 3등급으로 나뉜 안성·평택·용인 등 15개 수해지구당 격려금 1백만∼1백50만원씩 약 1천8백만원(지구당위원장 명의) 등이 올해금일봉의 지출내용.
3당합당이후 민자당이 지난해 쓴 공식금일봉 액수는 3억원.
「사비형」 금일봉은 정치인 개개인의 위치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 일반의원은 5만원·10만원의 금일봉을 내지만 중진급은 수십만원에서 천만원대까지 이른다.
김대표의 경우 거여의 「대표최고위원급」에 걸맞는 금일봉이 지출된다고 한다.
김대표는 또 금일봉 책정 때 눈치를 보거나 요모조모 재는 타입이 아니라는 게 주위의 설명.
따라서 적게는 20만∼30만원의 축의금에서부터 많게는 수백만원에 달하는 의원격려금조의 금일봉이 지급되는 데 월평균 1천만원 가량 지출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
김종필 최고위원은 무차별 금일봉은 배제한다는 원칙론자. 「허례허식과 낭비는 금물」이란 원칙아래 비서를 통해 나가는 금일봉은 자신이 직접 확인한다고 측근들은 밝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월평균 금일봉 액수는 세 최고위원중 가장 적은 2백만∼3백만원.
박최고위원의 월평균은 4백만∼5백만원선.
한 측근은 『박최고위원은 기업인답게 막 쓰지 않는 절제와 적정수준 유지의 스타일』이라며 『겉으로 나타나는 것을 싫어해 음성적으로 불우학생들을 돕는 일 등에 주로 금일봉을 전한다』고 말했다.
언론사에 내는 성금도 대체로 2백만원 안팎.
이들 세 최고위원들의 금일봉은 순수한 사비도 많으나 씀씀이가 큰 것은 대개 월 3천만원으로 책정되는 판공비에서 지출되는 것이 관행으로 돼있어 「사비형」 금일봉도 엄격히 따지면 「공금형」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여당지도자들에 비해 김대중 신민당 총재의 금일봉은 사람·단체에 따라 들쭉날쭉 한다. 김총재는 대개 ▲경조사 ▲언론사 모금 ▲수해·재해 ▲소년가장 등 신문에 보도된 불우이웃 ▲선거 때 후보자 격려 등에 금일봉을 전달하는 데 월평균 4백만원선.
김총재의 금일봉 지급은 은밀하고 매우 선별적인데 특별히 관심을 가질만한 인물(예컨대 탈당이전의 이해찬 의원)에게는 「푸짐한」 금일봉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는 다른 재정관리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직접 관리한다.
이기택 민주당 총재는 다른 여야지도자와는 달리 금일봉 규모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1만원권으로 된 금일봉을 이용,봉투가 두툼하게 보인다.
노태우 대통령의 경우 정무·행정 등 담당비서실별로 경조사에 금일봉이 나가는 데 50만∼1백만원 정도이고 수해지구·양로원 방문때 전달되는 금일봉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이른다는 관측.
금일봉을 포함,각종 행사에 소요되는 「대통령실 정보비」는 지난해 예산에 82억8천만원이 책정됐으나 공식적인 것 이외의 것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금일봉의 내용은 그 용도나 대상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금일봉」이란 이름으로 전달되는 격식에서 또 그 나름의 독특한 효용이 있는 것 같다.<정선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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