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 눈 속이려 탈당극 만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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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치가 야바위 판이다. 집권당인 원내 제1당이 쪼개져 제2, 제3당으로 전락했지만 탈당 의원들이 여당인지, 야당인지도 불분명하다. 국회의장도, 주요 상임위원장도 그대로 차지하고 있으면서 책임만 떠넘기려 한다.

집권당의 탈당 사태가 노리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집단 탈당을 주도한 김한길 의원이 "우리를 지지해준 분들에게 진정 책임지는 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말한 걸 보면 탈당의 목표는 다음 대통령 선거 승리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틀에 갇힌 채로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속절없이 패배를 기다릴 수 없었다"고 한다. 현재의 친노(親盧.친노무현 대통령) 대 반노(反盧) 구도로는 승산이 없다는 말이다.

어떻게든 지난 4년간 국정 실패의 책임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구도로 전선을 짜려는 것이다. 김 의원은 탈당의 원인이 '정책.이념적 동질성'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탈당을 반대하며 지적한 대로 결국 지역 대결 구도로 돌아가려는 것은 아닌가. 김 의원은 '민주 평화 중도 개혁 세력'의 대통합을 주장했지만 수사만 화려할 뿐 알맹이는 없다. 책임 회피와 지역 회귀를 감추기 위한 속임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욱 기가 찬 것은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한결같이 다시 만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의원은 "결국은 모두 함께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은 의원들이 빠져나간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자리를 비워 두겠다고 한다. 바로 다음 주 전당대회를 열겠다는 정당이 자리를 보전해두는 뜻이 무엇이겠는가. 위장 이혼이라는 말이다.

정당 정치가 왜 책임정치인가. 국민은 정당의 이름으로 정권을 맡기고, 원내 과반수 의석을 줬다. 그런데 임기 중 두 번씩이나 당명을 바꿔가며, 탈당과 창당과 통합이라는 현란한 정치 술수로 국정 실패의 책임을 털어버린다면 그로 인한 국민의 고통은 누가 책임지는가. 무책임한 한탕주의다. 그러고도 무슨 낯으로 국정 운영을 다시 맡겨 달라고 호소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