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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도요타를 따라잡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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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걸핏하면 파업하는 노조도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고, 현실적으로 파업에 따른 생산 손실은 잔업과 특근으로 만회해온 것이 보통이다. 현대차 노조가 정작 비난받아야 할 점은 따로 있다. 과연 높은 임금에 걸맞게 노동자들이 실력을 갖추려고 노력하느냐는 것이다.

현대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의 평균임금은 5500만원이다. 대표적인 1차 부품업체도 4800만원이다. 이에 비해 어느 2차 부품업체의 평균임금은 2300만원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이 업체는 종업원 전원이 '관리사무직'이다. 즉 생산 일체를 완전히 비정규직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 비정규직의 임금이 더 낮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평균임금은 더 떨어지게 된다. 과연 현대차 노조는 자신들의 노동의 질이 2차 부품업체 비정규직보다 두 배 이상 높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임금 격차가 기업의 생산성 격차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라는 항변이 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똑같은 현대차 생산라인에서 꼭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이 동일한 조건의 정규직보다 70% 정도의 임금(기간 내 임금)을 받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만약 정규직의 높은 임금에 부품업체 근로자나 비정규직의 임금을 쥐어짠 부분이 포함됐다면 이는 현대차 노조가 당연히 부끄럽게 여겨야 할 대목이다.

문제는 이것이 전적으로 노조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대차 경영진은 생산직 사원의 능력 제고를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으로 삼는 데 다소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 회사가 근로자의 자질 향상을 돕지 못하면 불만이 쌓이고 노사 상생은 기대하기 힘들다. 생산 목표 달성을 강조할수록 노조는 임금인상 요구에 더 매달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회사나 노조는 엉뚱한 곳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유혹을 받기 쉽다. 노동생산성 향상보다 시장에서 독점력을 행사하거나 부품업체에 단가 인하를 압박해 임금 상승에 따른 구멍을 메우려는 쪽으로 흐르는 것이다.

도요타는 어떠한가. 도요타는 경영의 최고 목표를 생산직 사원의 기능 향상에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도요타가 해외공장 지도를 위해 매년 내보내는 2만 명의 인력 중 상당수가 생산직 사원이다. 현대차라면 엔지니어가 담당할 업무를 생산직 사원이 맡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생산직을 중시한다.

다음으로 도요타는 부품업체와의 공생관계 구축에 힘을 쏟는다. 2차.3차 부품업체에 자기 분야의 노하우를 살려 부품설계 때 개선책을 내도록 적극 유도한다. 이런 개선안이 채택돼 생산성이 향상되면 그 부분만큼 부품업체와 공평하게 나눠 갖는다. 도요타가 잘되면 부품업체 근로자의 임금도 덩달아 높아지는 구조다. 1990년대 이후 도요타가 거둔 '가이젠(改善)' 효과를 살펴보면 부품업체와의 공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 '간판방식(just in time)'으로 널리 알려진 공장.물류 면의 효과는 연평균 300억 엔 정도다. 이에 비해 공생관계를 통한 '설계'면의 가이젠 효과는 연평균 1100억 엔이나 된다.

인적자원의 가치를 높이고 부품업체와의 공생을 도모하는 것은 한국.일본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타당한 도리다. 현대차도 생산직 사원의 생산성 향상과 부품업체와의 이익 분배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청와대에 모여 악수하고 지나가는 이벤트로 그쳐선 안 된다. 어쩌면 현대차가 도요타를 따라잡을 실마리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종원 일본 사미타마 대학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