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고 기증에 “서양선 용에 거부감”/말많은 한국 유엔가입 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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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축하공연·시가행진 서둘러 졸속준비/지나친 취재경쟁 유엔주변서 비웃음
한국정부가 유엔가입과 관련해 벌이고 있는 각종 해프닝과 떠들썩한 축하잔치 계획이 유엔가에 화제가 되고 있다.
유엔에 기증할 기념품에 관한 유엔과의 승강이,대규모 민속예술단의 자축공연,교포들의 맨해턴 시가행진,대통령을 비롯한 대규모 경축사절단,추태로까지 비쳐지고 있는 한국언론들의 지나친 취재경쟁 등.
유엔역사 45년동안 1백59개 회원국이 가입해왔지만 그동안 들어보지도,있어보지도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우스운 화제는 기념품 해프닝.
한국정부는 노태우 대통령의 9월 유엔방문에 맞춰 기념품으로 88올림픽때 사용된 큰북 용고를 기증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유엔은 그 크기 때문에 전시가 곤란하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비좁은 전시공간도 문제지만 한국이 기증하려는 용고에 그려진 용이 동양에선 상서로운 것이나 서양에선 악의 상징으로 알려져 유엔이 표방하는 평화와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정부가 계속 용고를 기증하겠다고 고집하자 유엔측은 정 그렇다면 유엔건물밖에 전시하되 사후관리를 한국이 맡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부 외교관들은 한국이 시간을 두고 북한과 협의,남북한 공동기념품을 기증하는 여유와 성숙함이 없는데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또다른 화젯거리는 대규모 축하민속공연과 시가행진이다.
한국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1백50명으로 구성된 공연단이 9월25일 맨해턴 카네기홀에서 한국의 유엔가입 경축공연을 갖는 것으로 돼있다.
유엔사상 어느 나라도 하지 않았던 자축행사로 단지 하루공연을 위해 엄청난 돈을 써가며 대규모 공연단이 미국에 오는 것이다.
한국의 유엔가입에 맞춰 이루어진 것이지만 이 때는 각국 대표가 회담·파티·리셉션 등으로 정신없이 바쁠 때인지라 정작 주요 초청대상인 유엔외교관들의 관람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2천7백석의 좌석을 메우기 위해 현지 상사들에 관객동원에 대한 협조를 요청할 것이 예상된다.
매년 10월 중순 맨해턴 한복판에서 코리언 퍼레이드라는 꽃마차 시가행진 행사를 벌여온 뉴욕 한인회도 이 행사를 한국의 유엔가입을 전후로 바꿔 치르기로 했다.
○…한국언론들이 유엔가입신청전부터 유엔에서 벌이고 있는 취재경쟁도 유엔사상 희귀한 일로 비쳐지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3일 유엔 한국대표부는 뉴욕에 특파된 한국기자들에게 케야르 총장등 유엔간부들과 타국 유엔대사들과의 인터뷰요청을 자제하고 인터뷰를 하더라도 외세의존적 질문은 가급적 삼가달라는 색다른 주문을 했다.
유엔대표부의 이같은 요청은 7월 중순부터 20여명씩이나 몰려온 일부 텔리비전방송 취재진들이 똑같은 사람들에게 3∼4번식이나 인터뷰요청을 하는등 법석이 벌어져 이들 유엔관계자들이 우리대표부에 항의비슷한 불평을 해왔기 때문이다.
또 방송은 뉴스진행자들이 아예 뉴욕에서 뉴스를 진행하면서 인공위성 사용료·중계차임대·임시스튜디오 설치 등으로 엄청난 달러를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뿐 아니라 유엔을 배경으로 생방송을 하면서 구색을 맞추기 위해 사무국 직원들에게 무리한 요구도 하고 있다고.
이밖에도 한국의 뉴스시간대에 유엔을 배경으로 생방송을 하고 있는데 저녁뉴스시간이 미국시간으로 아침 8시라 유엔본부에 만국기가 게양되지 않기 때문에 유엔직원들에게 「비상수단」을 동원,만국기를 게양토록 하고 있다고 유엔사무국 직원들이 전했다.
○…한국정부와 언론들의 해프닝은 유엔총회가 개막되면 그 절정에 이를지도 모른다.
대통령 총회연설등의 취재를 위해 유엔대표부에 숙소예약을 부탁한 수행기자 등이 2백명을 넘고 있다.
한국이 실질보다는 일과성 행사에 지나치게 국력을 낭비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일부 관련강대국들을 제외하면 다른 유엔회원국이나 미국인들은 한국의 유엔가입에 우리만큼 관심을 갖거나 흥분해 있지도 않다.
이같은 현지 분위기를 모른채 유엔주변에서 떠들썩한 잔치마당을 벌이려고 하는 것은 무표정한 이웃에 우리집에 경사났다고 축하를 강요하며 잔치자리를 빌려달라는 억지로 국제사회에 비쳐질 수도 있다.
더구나 통일된 한나라도,한의석도 아닌 두의석으로 유엔에 가입하면서 한국이 축제분위기에 젖어들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직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켰다는 냉전적·소아적 발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분단가입의 의미를 새겨보아야할 것』이라는 유엔외교관·사무처 직원들의 비아냥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유엔본부=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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