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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같은 지하철역에 내리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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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하철은 지상 대중교통에 비해 운행 간격이 일정하고 이동 시간을 예측할 수 있어 많은 시민이 이용합니다. 지하철 역사는 이제 이동만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도시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최근 역사는 공연.이벤트.전시를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거나 음악과 책이 있는 휴식공간으로 조성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주로 지하 1층에서만 이뤄집니다. 승강장은 그저 지하철을 타고 내리기 위한 공간으로만 존재합니다.

서울 충무로 역(下)은 주요 환승역의 하나로 이용객이 매우 많은 곳입니다. 영화거리인 충무로의 특성에 맞춰 지하 1층은 전시와 공연무대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승강장으로 내려가면 상황이 바뀝니다. 벽에는 노선을 알리는 색 띠와 역명표지가 있고, 천장에는 조명기구와 환기구 등 설비가 그대로 노출된 다른 지하철 역사와 같습니다. 바닥.벽.기둥의 마감재 색상과 무늬가 각기 달라, 정작 중요한 정보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역이름 표지나 안내방송을 놓치면, 이곳이 어느 역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독일 뮌헨의 베스트프리드호프 역의 승강장(上)은 분위기 좋은 카페를 연상시킵니다. 이 감각적인 공간의 설계자는 장식 요소를 배제하고 설비를 최소화했습니다.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는 지하공간에 필수적 요소인 빛을 장식 요소로 전환시켰습니다. 천장 중앙에 줄지어 매단 돔 형태의 대형 갓 내부에 조명.환기.공조 설비 등을 감추어 전체 공간은 더욱 단순해졌습니다. 빛과 색으로 장소에 고유 이미지를 부여해 승객들은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곳이 베스트프리드호프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지하에서 받은 느낌이 그 지역에 대한 이미지로 연결됩니다.

좁은 출입구를 거쳐 지하의 밀폐된 공간으로 내려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기능과 효율만 생각한 승강장은 심리적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승강장마다 고유한 이미지를 갖는 한편 이용자들의 환경 심리적 특성을 고려해 보다 아늑하고 심미적인 공간을 제공해야 합니다.

권영걸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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