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상업주의|양식은 멀고 돈은 가깝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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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문화계가 돈을 밝히는 모습은 고기를 찾는 중을 보는 것만큼이나 모양이 안 좋다.
적어도 문화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얄팍한 상술을 부리거나 한때의 인기에 편승해 한탕을 노리는 풍조가 만연된 사회라면 그 사회는 중증의 병든 사회라고 봐도 맞다.
2년전 출간된 소설가 황석영씨의 창작집『열애』를 사본 독자들은 실망을 넘어 배신감을 맛봤을 것이다.
그 책에는 신작이라고는 제목으로 쓰인 단편『열애』한편뿐이었고 나머지는『한씨년대기』니 『낙타누깔』등의 알려질대로 알려진 단편들로 채워져 있었다.
더욱이 책 뒷부분은 황씨의 대하소설『장길산』에서 몇부분을 떼와 단편처럼 묶어놓기까지 했다.
인기작가의 소설집중에는 이같은 재탕·삼탕의 중복출판이 비일비재하다.
법정싸움으로까지 번진 소설『태백산맥』의 인세시비는 어떤가.
작가 조정내씨는 출판사가 일부 인지를 위조, 인세를 떼먹었다는 주장이고 이에 대해 출판사는 출판권을 뺏기 위한 억지라고 반박한다.
해적출판의 경우는 상업주의 이전에 파렴치한 범죄에 속한다
주로 번역서에 많이 나타나는 해적출판은 남이 애써만든 책을 토씨만 바꾸며 통째로 베껴 덤핑하는 등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고 있다.
미국출판사와 저작권계약을 하고『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소설책을 낸 어느 출판사는 뒤늦게 무단 번역한 다른 출판사가 광고를 해대며 설치는 통에 솔절없이 당한 케이스다.
미술시장은 마치 부동산 투기판을 방불케한다.
강남의 아파트가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었듯이 웬만한 화가의 그림은 달력속에서나 구경하게 된지 이미 오래다.
서민들은 그림 값이 왜 그리 비싼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작품의 예술성과 시장법칙의 희소가치 때문에 그렇다고 하나 그 가치라는 게 화랑을 중심으로 자기네끼리 정하고 부풀리고 해서 부유층을 상대로 장사를 해 턱없이 값을 올렸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돈맛을 들인 어느 화가는 자신의 어떤 작품이 인기가 있음을 알고 유사한 작품을 연속적으로 그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입시부정에 관여하고 가짜 악기로 사기치는 일부 음악인들 또한 돈에 걸신들린 세태의 한 반영이라 하겠다.
이른바 대중문화인 영화·가요·비디오쪽의 상업주의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영화의 경우 외화 프린트 벌수제한과 교호상영제라는 게 있다.
흥행이 잘되는 외화를 무제한 풀면 상대적으로 한국영화가 죽게 돼있어 요즘은 외화 l편에 14벌까지만 복사할 수 있게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업자들은 멋대로 벌수를 늘려 극장에 걸고도 태연하다. 몇천만원 더 벌어 몇백만원 벌금내면 그 뿐이라는 배짱때문이다.
교호상영제란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교대로 상영하라는 제도다.
역시 한국영화보호책의 하나인데 이를 지키는 극장들의 행태가 참 가관이다.
그들은 두달쯤 외국영화를 돌리다 딱 하루 옛날 한국영화로 땜질하고 다시 외국영화를 돌리고 있다.
연중 1백46일은 한국영화를 상영하라는 스크린쿼타제라는 것도 있는데 일부 변두리극장의 경우 이른 아침에 한국영화를 한번 돌린 다음 종일 외화를 상영하면서도 그날을 방화상영일로 신고하는 경우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에로시비나 한 작품이 히트하면 아류를 양산하는 문제는 식상할 만큼 오래된 것이라 재론할 여지도 없다.
가난하나마 자존심으로 산다는 연극계도 상업주의에 물들어 가고 있다.
소위 블랙코미디의 대부분이 말초적 말장난으로 관객을 잡으려하고 최근에는 노골적 성묘사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스포츠지 만화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대표적 예가 강철수씨 만화『돈아돈아돈아』의 연극화로 1편이 돈을 좀 버니까 2편까지 만들어 공연중이다.
고려대 원우현교수 (신문방송학)는『문화계의 상업주의는 문학인들의 양식을 병들게 하고 나아가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는 결과를 빚게 해 한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씻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계의 상업주의 척결은 문화인들의 양식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게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혜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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