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하나로 된 구속영장/김승욱 교열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초의 독자」로 신문기사를 다듬는 교열기자로서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공공기관의 문서를 다룰 때다. 「…견타하여 지면에 전도케하고…」같은 해묵은 경찰의 피의자진술조서는 처음부터 취재기자들의 손으로 고쳐져 독자들에게 아예 전달되지도 않지만 바쁜 마감시간에 전문이나 요약게재가 필요한 판결문이나 공소장·영장등을 접하게되면 짜증부터 나게된다.
난삽한 용어에 딱딱한 문장도 그렇지만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진 문장을 읽다보면 의미는 헷갈리고 머리는 무거워진다. 엊그제 나온 오대양관련 유병언 세모사장 구속영장만해도 그렇다. 2백자 원고지로 20장에 가까운 분량의 글이 마침표 하나없는 한 문장으로 시종 숨가쁘게 연결됐다.
신문으로서는 역사의 기록이라는 책무 때문에 원문을 충실히 반영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독자들에게는 늘 미안하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과연 관련자를 제외한 얼마만큼의 독자가 그 「피곤한 문장」을 읽어주고 의미를 명료하게 파악할지 의심스럽다. 강제적 물리력만이 폭력은 아니다. 읽는이의 정신을 혼란시키고 황폐화시키기 까지 하는 난삽한 문장의 강요 또한 언어에 의한 폭력이 아닐까.
그런 문장을 써내는 사람들은 흔히『논리에 한점의 오류나 흐트러짐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하는자로서,…하고,…하며,…하고」등으로 이어지는 길고긴 평면적 나열이 읽는이의 이해를 바탕으로한 논리적 설득력을 과연 갖는 것일까.
70년 1월 국무총리훈령 제68호에 따라 공문서의 한글전용이 실시되고는 있다.
영장이나 판결문도 한글로 되어 보기는 편해졌다. 하지만 한 문장에 모든 내용을 담는 「숨쉬기조차 버거운 공문서」의 전통은 그대로 살아 있다. 더구나 그속에는 한문투의 한글어휘도 그대로 남아 그 뜻을 이해하는데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는 형편이다.
개선의 방향은 분명하다. 쉬운 어휘의 선택,읽기 편하게 논리적 묶음으로 마무리된 짧은 문장등으로 「언중」의 언어습관에 맞는 문장을 쓰면 된다. 문화부가 추진중인 행정용어 심의위원회나 국어연구원을 비롯,전문연구가들의 노력도 시급하다. 사회적 약속인 언어를 통해 공동의 삶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