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두쪽날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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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조계종이 자칫 두쪽으로 갈라설지도 모를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서의현 총무원장측과 중흥회를 중심으로 한 반서 재야진영은 종단내분수습을 외해 29일 개회된 제105회 임시 중앙종회의 이틀째 회의에서 종회의 위임을 받은「종단 제반 현안문제 수습 대책위원회」가 내놓은 수습방안의 안건채택여부를 놓고 격돌, 분개한 재야측 의원들이 끝내 집단 퇴장극을 연출함으로써 사태를 원점으로 다시 끌어내렸다.
이날 종회에 수습방안을 내놓았던 「종단제반 현안문제수습대책위원회」는 회의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양측이 개회직후 합의, 구성했던 의안 도출기구였다. 양측에서 각9명, 중도 1명을 합해 모두 19명으로 구성된 대책위는 29일밤 포교원에서 모임을 갖고 약 2시간30분 동안 논의를 거듭한 끝에 다음날 속개되는 종회에 제출할 안건으로서의 잠정합의사항을 이끌어냈다. 서원장측을 대표하는 허현스님(총무원 총무부장)이 발의해 이루어진 이 합의 사항은 『현 총무원장과 집행부 간부·종회 의장단을 비롯한 종회의원은 모두 물러나며 이들이 갖고 있는 분사 주지 및 종립학원(동국대)·불교방송 이사직등 종단내 모든 공직에서도 사퇴, 이후로는 종신토록 일체의 공직에 취임치 않고 수행에만 전념토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합의사항에는 서원장측에서 허현·박명선스님, 재야진영에서 8명의 스님이 서명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30일 오전에 속개된 종회 본회의에서 대책위가 마련한 이 수습방안은 정식 안건으로 채택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돼버렸다. 『합의 내용을 설명한 뒤 이를 안건으로 상정하려 했으나 서원장측의 일부 종회의원들이 강경하게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바람에 실패했다』는 것이 반서 재야측의 주장이다. 결국 분개한 재야측 종회의원들의 집단퇴장으로 종회는 휴회가 선언됐으며 그 직후 의장인 서정대 스님은 기자들에게 모든 공직에서 사퇴할 것을 선언하고 잠적해 버렸다.
『허현스님의 수습방안은 서총무원장 집행부의 입장을 대리한 것이 아니라 종회의원 개인자격으로 내놓은 것이므로 합의사항을 인정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힌 서원장 진영은 이날 오후4시쯤 서둘러 자파의원들을 소집, 과반수선인 38명(재적의원 74명)이 참석한 가운데 종회를 속개했다.
이들은 속개된 회의에서 사퇴의사를 표명한 서정대의장의 후임에 박종하스님을 선출하고 대책위 해체, 원로위원들에 의한 종정추대, 서원장 직무정지 가처분신청과 관련된 중흥회측 스님들(11명)에 대한 중징계 건의등을 전격 결의했다.
이에 대해 반서 재야진영에서는 이 종회가 모영·현호스님등 몇몇 의원들의 대리서명을 받은 뒤 이들이 참석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38명에 의한 정족수 성원을 선포해 속개된 것이므로 종회 의장선출등 거기에서 결의된 모든 사항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재야측은 또 『이제 어느 쪽이 올바른 명분을 가지고 있는가가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본다. 한달 정도의 관망기간을 둔 뒤 조계종단의 개혁과 중흥을 위해 전 종도의 뜻을 모으는 승려대회를 개최하는 일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원장 진영이 반쪽만으로 열린 종회에서 전격적으로 새 체제를 구축하고 상대편과의 대화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함으로써 조계종은 상당기간 분란속의 파행을 면할 수 없게 됐으며 자칫하다가는 80년대 초의 조계·개련사 사태처럼 두개의 총무원이 들어서서 싸우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안팎으로 팽배해가고 있다.

<정교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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