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의료 지원단체 "청진기 대보면 아프간 아이들보다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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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탈북한 김광진.광욱(13.가명) 쌍둥이 형제. 이 형제는 함경북도의 한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북한에서 300만 명이 아사했다는 최악의 경제난(북한에선 '고난의 행군'으로 지칭)시기였다. 극심한 영양부족에 시달렸던 이들은 "한 끼라도 배불리 먹는 게 최대 소원이었다"고 토로했다. 한국에 온 뒤 끼니 걱정은 사라졌지만 유년기 영양결핍으로 작아진 체형은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 이들의 키는 각각 139cm, 135cm. 남한의 또래 아이보다 무려 20cm나 작다. 이들은 "북한에서 평균 키는 됐기 때문에 작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북한 어린이들의 영양상태는 가히 낭떠러지 상황이다. 2004년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7세 미만 어린이 80여만 명이 만성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니세프 평양사무소 고팔란 발라고팔 대표는 "북한 어린이의 체중미달 상태가 상당히 위험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최빈국 아이들과 차이 없다"=북한을 자주 오가는 의료지원단체의 한 관계자는 "아이들 대부분이 얼굴이 새까맣고 키가 작으며 일부는 영양실조로 올챙이처럼 배가 튀어나왔다"고 전했다. 국제의료구호 활동을 수년째 해왔다는 그는 "청진기를 대보면 그 상태가 아프가니스탄 등 최빈국 아이들보다 결코 낫지 않다"고 설명했다.

2005년 11월 방북한 경험이 있는 홍석희(12.경기도 안양시 화창초교 5년)군은 "평양의 한 소학교에서 북녘 친구들과 손을 잡았는데 살이 거의 없었다"며 "병원에서 본 아이들은 뼈만 보일 정도로 살이 없고 볼이 홀쭉했다"고 했다.

남북 어린이의 체형 격차는 확대되는 추세다.

서울대 박순영 교수는 1999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탈북한 전체 남녀 어린이.청소년(2~19세)1193명의 키를 측정한 결과 "남북한 어린이가 10대에 접어들어 키 차이가 더 벌어진다"고 밝혔다. 7세 남자 아이 기준으로 남북 간 차이는 2cm이지만, 13세 아이는 약 13cm나 됐다. 박 교수는 "만성 영양결핍에 시달리는 북한 어린이들은 남측에 비해 성장속도가 매우 느린 편"이라고 말했다.

북한 어린이들은 각종 질병에도 무방비 상태다. 이화여대 장남수 교수는 "영양상태가 극도로 부실한 아이들은 홍역에만 걸려도 사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 당국도 우려"= 대북 지원 단체들에 따르면 요즘 어린이 지원사업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북한 당국자들의 발언이 부쩍 잦아졌다. 북한의 한 당국자는 남측 인사에게 "조선 민족이 살아가는 이유가 자식 때문이 아니겠느냐. 아이들이 굶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더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북한 스스로도 키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키 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키 크는 사탕, 키 크는 콩을 개발해 보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키 크기 운동인 농구.배구.철봉.평행봉 운동을 많이 시켜라"는 교시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특별취재팀=이양수 팀장, 채병건·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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