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200배 폭리 ‘전봇대 장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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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전신주 장사로 200배가 넘는 폭리를 취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전신주 임대사업을 통해서다.

한전은 전신주 1개당 지방자치단체에 1년에 약 300원의 도로점용료를 내는 대신, 기간통신사업자나 유선방송업자에게 전신주를 임대하면서 연간 6만~9만원까지 받아왔다. 정부는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도로점용료 상향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자, 올 1월 1일부터 64.2%를 올렸다.

하지만 지자체 관계자들은 “300원에서 65% 올라도, 500원밖에 안 된다며, 한전이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을 정부가 방치하고 있는 셈”이라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한전이 관리하는 전신주는 전국에 약 740만 개가 있다. 도로법 40조는 도로를 점용하는 경우 점용료를 내도록 하고 있다. 한전은 ‘공익 목적의 시설은 점용료를 감면한다’는 도로법 시행령에 따라 전신주 1개당 절반인 300원만 내왔다. 원래는 600원이다. 전신주 도로점용료는 1993년 이후 한번도 인상된 적이 없다.

반면 한전은 전신주에 인터넷 케이블·유선방송 케이블을 설치할 수 있도록 임대하면서 통신사업자에게는 연 1만7000원, 유선방송사업자(SO)에게는 1만원 정도를 받고 있다. 이 액수는 전국이 모두 같다.

다시 말해 한 개의 전신주에 KT, 하나로텔레콤, LG파워콤, 온세통신 등 4개 인터넷 사업자와 1개 유선방송사업자만 임대를 해도 연간 7만8000원의 수입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면 지자체에 내는 도로점용료는 300원이기 때문에 무려 240배 차가 난다.

이코노미스트 취재 결과, 한전은 2005년 1010억원의 전신주 임대수입을 거뒀다. 한전 관계자에 따르면 전국 740만 개 전신주 중 임대수입이 발생하는 전신주는 약 3분의 1이다. 약 250만 개 전신주를 통신사업자가 임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전이 낸 점용료는 대략 25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청주시 시정개발연구팀 관계자는 “전산화 작업 이전에 설치돼 파악이 되지 않는 불법 전신주가 상당수 있어 한전이 취하는 실제 이득은 더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주시 사례만 보더라도, 한전이 전신주 임대사업으로 얼마나 막대한 이익을 취해왔는지 잘 나타난다. 청주시 상당구와 흥덕구에 점용허가가 난 전신주는 1만5000여 개(2005년 기준). 청주시는 한전으로부터 연간 452만1300원을 징수했다.

반면 한전은 한 개의 전신주에 인터넷사업자 등 여러 통신사에 임대를 주면서 평균 5만원에서 많게는 9만원의 이득을 챙겼다. 대략 7억5000만원에서 9억원을 받아 왔다는 얘기다.

지자체 “점용료 현실화하라”

제주시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 시내에 한전 전신주는 2만여 개다. 제주시에 따르면 한전은 일반 통신사업자에게는 전신주당 월 900원, 기간통신사업자에게는 월 2000원 정도를 받는다. 이를 계산하면, 한전은 제주시 지역에서만 연간 4억원에 육박하는 수입이 발생한 셈이다. 반면 한전이 제주시에 낸 도로점용료는 600여만원에 불과하다.

울산시의 경우는 이 문제를 아예 ‘혁신과제’로 선정해 중앙부처에 지속적으로 개선을 건의해 왔다. 이번에 건교부가 도로점용료 인상을 결정하는 데도 울산시의 역할이 컸다. 울산시청은 그동안 2만8000여 개 전신주에 대해 연간 약 1100만원의 점용료를 부과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전수검사를 한 결과, 6만8167개의 전신주가 설치된 것을 확인했다. 울산시청은 이를 통해 올해 인상된 64.2%를 적용, 연간 8500만원의 지방세수를 거두게 됐다. 종전보다 7000만원 이상 늘어난 수치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익성을 들어 도로점용료를 할인해주고 있지만, 한전이 막대한 임대료를 받는 것은 점용허가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청주시청 관계자는 “한전이 임대수입을 위해 전신주를 임대하면서 전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도시 미관을 해치고, 전신주가 전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넘어지는 사고까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는 한전이 진행 중인 전신주 지중화 사업에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전은 전신주를 없애는 지중화 사업을 하면서 공사 비용의 3분의 1을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지자체뿐만 아니라 임대 통신사업자에게도 공사비를 전가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정부가 받게 한 것” 한전 항변

이 때문에 도로점용료를 현실화해 이 비용을 지자체가 도로 보수 설비나 지중화 사업비용으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청주시가 주장하는 도로점용료는 전신주당 2만원이다.

그렇다면 한전의 입장은 어떨까? 한전 측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5년간 전신주 임대수입 현황 자료’를 요구하자 “호의적인 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대응했다.

그러면서 “전신주 임대료로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다고 하지만, 임대료를 받는 것은 한전의 의도가 아니라 정부에 의해 강제로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정부가 정보화촉진법에 따라 전신주를 임대하도록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한전 입장에서 보면, 전신주를 임대해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도 말했다. “통신설비를 임대하면 설비 개보수 비용이 증가하고,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전신주 수명 단축 등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 한전 브랜드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며 “빌려주지 않는 것이 한전으로는 최선”이라는 주장이다.

도로점용료가 뭐기에

현수막 걸 땐 1㎡당 하루 100원씩 내야

도로의 구역 안에 시설물을 설치하려면 지자체 관리청의 점용허가를 받아야 한다. 전신주, 우체통, 공중전화, 수도관, 가스관, 광고탑, 주유소, 노점, 자동판매기 등의 시설이 이에 해당한다.

점용료 산정기준은 보통 토지의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어 송전탑의 경우 점용면적이 1㎡이면 통상 토지 공시가격의 5%에 해당하는 금액을 연간 도로점용료로 낸다. 쉬운 말로 땅 사용료를 내는 것이다.

점용물에 따라 도로점용료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맨홀은 지름 0.1m이하는 150원, 1m 초과 ~2m 이하는 2250원을 낸다. 광고판은 표지면 1㎡당 하루에 100원을 낸다. 연간으로는 1만5000원이다.

현수막도 공짜로 설치하는 것이 아니다. 1㎡를 기준으로 하루 100원이다. 종교행사 용도의 현수막은 여기서 50%를 감면해 준다.

주유소, 주차장, 휴게소 등 건축물은 1층 건물은 1㎡당 1년에 토지가격에 5%를 곱한 금액을 내야 하고, 4층 이상인 건축물은 6.5%를 곱한 점용료가 부과된다. 버스표 판매대는 1%, 노점은 5%를 곱한 금액을 도로점용료로 낸다.

도로점용로와 관련, 공무원의 부패도 심각하다. 국가청렴위원회가 지난해 말 도로점용 허가 대행업소 181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8%가 도로점용 업무 처리와 관련해, 관할 관청에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답했다.

청렴위는 공무원들이 도로점용 인허가 기준을 임의로 적용하거나, 도로시설물 훼손 비용 등 추가 부담액을 업자에게 부당하게 징수한 사례, 사후 관리. 감독 부실 사례 등도 적발해 개선을 권고했다.

지난해 도로점용료 부과 총액은 1482억원(21만9614건)이었다. 이 가운데 미납액은 160억원(3만5742건)으로 약 10%에 달했다.

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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