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사교육과 거리 먼 지방서 서울대 법대 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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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7학년도 서울대 합격생 중엔 사교육 혜택을 받은 적이 없거나 덜 받은 지방 고교 출신들도 있다. 논술 대비도 주로 학교 교사에 의존해야 했지만 이들의 논술 성적은 뒤떨어지지 않았다. 법대에 합격한 두 지방 학생의 얘기를 들어봤다.

◆"시험 전날에도 학교에 있었어요"=2007학년도 서울대 정시모집에서 법대(일반전형)에 합격한 공주한일고 김대현(18)군. 그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학교를 떠나본 적이 거의 없다"고 고교 3년을 회상했다. 방학 중에도 집(충남 계룡시)에 가 있는 날은 기껏해야 4~5일 정도였다. 공주한일고는 면 소재지(충남 공주시 정안면)에 있다. 학교에서 전교생이 먹고 자는 기숙학교다. 김군은 서울대 시험일(지난달 16일) 전날에도 학교에서 논술 특강을 들었다.

김군은 "오로지 학교만 믿었다"며 "선생님들이 시험 전날까지 붙잡고 해주신 논술 첨삭 지도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학교가 산골에 있어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면 학원은커녕 인가도 찾기 힘들다. 기다리는 건 밤밭뿐이다.

이 학교 상담실장 최용희 교사는 "국어.사회.역사 담당 교사 6명이 집중적으로 논술 교육을 했다"고 말했다. 고 1~2학년 때는 수능 준비에 집중하면서 2주에 한 차례씩 방과 후 논술 특강을 실시했다. 고 3 학생들은 수능이 끝나자마자 7주간 논술과 면접.구술 특강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김군은 "학교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습관이 논술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 원광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공주한일고에 합격하기 위해 학원에 다닌 게 유일한 사교육 경험이다.

초.중학교 시절엔 역사에 푹 빠져 역사서(조선왕조실록)를 탐독했다. 고 3 때에도 매주 2~3권의 역사서 등을 읽었을 정도다. 고 3 때 읽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한비야 지음)가 입시 기간 큰 도움이 됐다는 게 김군의 설명이다.

이번 서울대 논술 문제는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사회의 각 영역이 어떤 속도로 변화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제시문은 익숙했던 반면 충족시켜야 할 조건이 많고, 독창적인 사고와 글쓰기가 요구되는 문제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군은 "문제를 접하고 180분 중 40분을 논술 개요를 짜는 데 쓴 뒤 논제가 요구하는 내용을 서술했다"고 말했다. 김군은 고교 3년 내내 전교 1~2등을 차지했으며, 수능에서는 한국지리와 사회문화에서 한 문제씩 틀려 500점(원점수) 만점에 494점을 받았다. 장래 희망은 판사나 로펌 변호사다. 공주한일고는 올해 대입에서 서울대에 15명(일반전형 14명, 농어촌 특별전형 1명)이 합격했다.

◆"고1 때부터 글쓰기 연습"=서울대 법대(일반전형)에 합격한 전남 영광 해룡고 김의중(19)군은 논술 비결을 "학교 선생님에 대한 신뢰"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김군은 고 1 때부터 주말을 이용해 글쓰기 연습을 했다. 연습할 때 쓴 글을 들고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국어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과 논제를 이해하는 방식과 글의 전개에 대해 토론했다. 비문과 맞춤법을 교정받기도 했다. 고 1 때 한 달에 1~2번이던 글쓰기 연습 횟수를 고 2 때부터는 매주 1~2번, 수능 이후에는 매일 1~2번으로 늘렸다.

김군은 "글을 쓸 때마다 논제 파악과 개요 작성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라는 선생님 말씀을 따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첨삭지도는 번거로운 일이지만 선생님들이 귀찮아하시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영광에서 태어나 해룡 중.고교에 다닌 김군은 수능 때까지 학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다. 김군은 "영광에는 변변한 학원이 없고 학원이 있는 광주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며 "선생님이 유일한 배움의 통로"라고 말했다.

학교는 사교육에서 단절돼 있는 지방 고교의 환경을 고려해 각종 자구책을 마련했다. 신입생들을 위해 논술과 구술 실력을 스스로 훈련하는 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대학 가는 길'이라는 가이드북을 자체 제작했다. 독서습관을 기르기 위해 한 학기에 30여 권의 과목별 필독서를 제시하고 읽었는지를 간단한 쪽지시험으로 확인해 수행평가에 반영했다. 또 선택적 보충학습 체제를 도입해 학생들이 부족한 과목을 학원처럼 골라 수강할 수 있도록 했다.

김군은 "글을 쓴 뒤 선생님이 친구들과 토론시간을 유도했던 것이 구술과 논술을 동시에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 학교 국어담당 은희균(43) 교사는 "아이들의 질문에는 수준의 높고 낮음을 떠나 성의를 다해 답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교사들 사이에 자리 잡혀 있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는 이번 입시에서 이날까지 서울대 6명, 연세대 3명, 고려대 8명 등 주요 대학에 합격생을 냈다고 밝혔다. 수능을 마친 뒤 김군은 학교의 양해를 얻어 서울 친척집에 머물며 대치동의 논술학원에 한 달간 다니기도 했다.

강홍준.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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