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제갈공명』진순신 지음/박희준 옮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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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인간 제갈공명에 초점을 맞춘 만큼 공명의 출생에서 사망 때까지 54년간의 중국역사가 이 소설의 무대.
전체 줄거리는 나공중의『삼국지연의』와 비슷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지만 등장인물에 대한 해석과 사태의 세부진행은 크게 다르다.
저자 진순신은『삼국지연의』에서 도덕적인 군사전략가(동양의 이상적 고대인물)로 각인된 제갈공명의 인물상을 뿌리째 무너뜨리고 경세치국의 정치가로 부각시킨다.
특히 비조와 대비, 공명을 바람직한 법가사상가로 그리고 있다.
곧 조조를 극단적인 마키아벨리스트로 묘사한 반면 공명은 백성의 삶과 평화를 위해서는 마키아벨리적 수법도 동원하지만 어디까지나 백성의 삶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에서 조조와 뚜렷하게 구별짓는다.
이 소설의 특징은 제갈공명을 피와 살이 느껴지는 살아있는 인간으로 그린 점이다.
계모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느끼고, 이민족의 처녀를 측실로 맞으며,『중원의 평화를 위해서는 황제의 위를 물려받을 수도 있지 않느냐』며 자신에게 되묻기도 하고,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병마와 싸우며 불교에 귀의하는 장면 등에서 그의 인간적 고뇌를 읽을 수 있다.
정치가이자 대문장가이며 발명가이기도 한 공명의 탁월한 지도력은 유비 집단이 아무런 뿌리도 갖지 못한 파촉에 촉한을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를 통해 전란의 시대에서 평화의 시대로 들어서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역사소설이라기보다 인생과 역사의 본질, 역사 속에서의 한 개인의 역할, 전쟁과 평화, 운명을 바꿔놓는 인간관계의 중요성 등을 생각케 하는 인간과 역사와 경영의 서라는 느낌을 준다.
까치 발행, 상하 각권 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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