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말 만포병원서 병사/춘원 이광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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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평양 후퇴 인민군에 끌려가다 사경/동상 심해 홍명희에 편지보내 입원/김국후특파원 소서 40년만에 확인
【알마아타(소련 카자흐공화국 수도)=김국후특파원】 근대 한국문학을 개척한 문호이자 독립운동가였으며 일제말 친일활동으로 영욕을 함께했던 춘원 이광수는 6·25전쟁 초기 북한 인민군이 유엔군에 밀려 평양에서 강계로 후퇴하면서 끌려가던중 동상에 걸려 평안북도 만포인민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50년 12월 초순 58세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북한에서 작가 활동을 하면서 직업총동맹 부위원장·문화성 부상 등을 지내다 그후 숙청돼 소련으로 망명한 정상진씨(73·알마아타 거주·재소고려인신문 고려일보 주필)와 역시 북한에서 조­소문화협회 부위원장·외무성 부상 등을 지내다 소련으로 망명한 박길용 박사(71·소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등의 최근 증언에 의해 40여년만에 드러났다.<관계기사 3면>
지금까지 국내외에서는 춘원의 말년 상황에 대해 ▲6·25때 납북되어 생사를 알 수 없다(예술원 발행 한국문학사전) ▲6·25때 총살됐다(간첩 이혜근 증언) 또는 6·25당시 죽었을 것이다(북한학자) ▲6·25이후 민세 안재홍등과 함께 만주의 목단강시로 강제 소개돼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자 북경의원에 입원,55년 봄 그곳에서 사망했다(재중동포들 증언) ▲6·25후 북한의 산간지대로 쫓겨나 살다가 63년 여름 사망했다 ▲50년 평양에서 옥사했다는 등 여러설이 분분했다.
그러나 그가 겪은 수난과 죽음에 이른 사연·시기 등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었다.
춘원이 50년말 사망할 때 북한 문화성 부상으로 재직했던 정상진씨에 따르면 북한은 6·25전쟁때인 50년 7월 중순께 서울에서 춘원을 평양으로 끌고 가 『일제의 앞잡이 문인·민족반역의 반동분자』라며 함께 납북해간 예술인·지식인 등과 함께 감방에 수용했으며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50년 10월중순께 평양에서 후퇴하면서 앞으로의 이용가치등을 고려해 춘원등 일부인사를 평북(현재는 자강도) 강계를 향해 도보로 끌고갔다는 것이다.
끌려가던 춘원은 강계에서 30㎞쯤 떨어진 험악한 산악지대인 속칭 「개고개」고지에 이르렀을때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와 눈보라속에서 원체 병약했던데다 다리등에 심한 동상이 걸려 사경을 헤맸다고 한다.
고통을 못이긴 춘원은 일본유학·상해 독립운동시절 함께 하숙을 했고 서울에서도 문학활동을 함께해온 당시 북한 부수상겸 노동당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있던 『임거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62년 부수상·68년 3월 75세때 평양에서 노환으로 사망)에게 『춥고 배고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두다리까지 동상이 걸려 퉁퉁 부어올라 더이상 걸어갈 수가 없소. 마지막 부탁이오. 죽어가는 친구하나를 구원해 주시오』라는 사신을 인편을 통해 전달했다는 것.
당시 고위지도자들과 함께 후퇴해 강계에 있던 홍명희는 춘원과의 오랜 우정을 되새기며 고민끝에 그를 구하기로 결심,김일성 수상의 재가를 얻어내 즉시 부관과 지프를 「개고개」고지로 보내 사경을 헤매던 춘원을 강계로 데리고 가 자신의 집(임시숙소)에서 며칠동안 자가요법등으로 동상 등을 치료하며 보호했으나 끝내 운명했다는 것이다.
이런 정씨 증언에 덧붙여 당시 조­소문화협회 부위원장이었던 박박사에 따르면 홍명희는 춘원의 다리동상이 점점 악화되자 그를 강계에서 15㎞쯤 떨어진 만포의 북한인민군병원으로 후송,치료를 계속했으나 50년 12월 초순께 동상과 지병인 폐결핵 등이 악화돼 병원에서 숨졌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당시 북한 작가·고위층 첫 증언에 놀라움” 전문가
춘원의 3남(두아들은 일찍 사망) 이영근 박사(63·원자핵물리학자·미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작년 8월 춘원 탄생 1백주년(92년) 기념사업 준비차 서울을 방문,기자회견을 통해 『지금까지 아버지의 최후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었으나 최근 중국 교포들이 「납북된 아버지가 6·25전쟁 후 북한에 의해 목단강시를 거쳐 지병이었던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북경의원에 입원중 55년 봄 사망했다」는 말을 전해와 89년 연변과 북경 등을 뒤져 아버지의 납북이후 행적을 찾았으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한바 있다.
그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있는 아버지의 납북이후 행적을 찾기위해 평양을 방문할 계획이며 하루바삐 통일이 되어 아버지의 유해라도 모실 수 있게 됐으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본사는 25일 미국에 살고 있는 이씨를 비롯,장녀 정란씨(57·영문학박사·변호사) 차녀 정화씨(55·생화학박사·펜실베이니아대 방사선과 연구위원) 등 춘원의 가족들에게 춘원의 최후에 관한 취재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국제통화를 시도했으나 모두 여행중이어서 통화하지 못했다.
『이광수와 그의 시대』 전3권을 펴낸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55·서울대)는 『지금까지 춘원의 최후에 대해 여러가지 설만 난무할뿐 모두가 확실치 않았으나 당시 북한에서 작가활동과 관련단체장·정부고위직 등을 지낸 인사들의 증언을 처음 듣게 되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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