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학계 연구활동을 통해 본 현실|경제불평등 부동산 값이 주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우리 사회의 불평등문제가 심각하다. 국민들의 정치·경제현실에 대한 상대적 불만이 점증하고 있으며, 사회과학자들은 불평등이 우리사회발전의 최대 장애물임을 주장하고 있다. 국민들이 느끼는 문제의 심각성은 서울대부설 「사회과학연구소」와 「인구·발전문제연구소」에서 실시해 온 연례조사 결과에서 나타난다. 경제현실에 대한 불만이 86년12월 34%에서 88년 39%, 89년 63%로 급증해왔다. 이는 정치현실에 대한 불만증가(59%-58%-70%)나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증가(46%-52%-68%)보다 뚜렷하다.
사회과학자들의 모임인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는 이 같은 불평등문제의 심각성에 공감, 지난 2년간 정치·행정·경제·경영·사회학 등 사회과학 전반에 걸친 공동연구를 해왔다. 그 결과를 23, 24일 이틀간 서울대 호암생활관에서 열린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 토론했다.
또 한국정치학회 주최로 25일부터 27일까지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도전과 한국정치」 국제학술대회에서도 국내 민주화와 관련된 불평등 문제가 주제 발표될 예정이다.
이 같은 대표적 기성학회들의 불평등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지금까지 진보적 소장학자들에 의해 「학술운동」 차원에서 진행돼온 불평등연구가 학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으며 나아가 「정책적 대안마련」 차원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뜻한다.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 연구 중 사회학분과를 맡은 홍두승 교수(서울대)는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불평등 체감도를 발표했다. 설문조사는 전국 성인남녀 취업자 2천명 대상.
조사결과 「소득과 재산배분」에 대한 불평등인식이 약70%로 가장 높았으며 교육기회의 불평등인식이 약33%로 가장 낮았다.
즉 경제적 자원(부)의 배분이 가장 불평등하다는 인식이다. 「법 집행」에 대해서도 「공정하다」가 14%에 불과한 반면 「불공정」이 57%로 집계돼 법 불신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더욱 심각한 지표는 「노력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 안 되고있다」는 인식이다.
전체응답자중 「노력에 비해 적절한 소득을 얻고있다」는 사람이 27%에 불과했다.
가장 큰 불만도인 「소득이 노력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는 응답을 계급별로 살펴보면 농촌하류계급(소작농 등)이 51%, 독립자영농이 38%, 근로계급이 27%등으로 나타나 농촌인구의 상대적 소외감을 알 수 있다.
홍 교수는 결론에서 『절대적 생활수준 향상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의 급상승 등에 따른 좌절감과 사회적 적대감은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경제분야를 맡은 김황주 교수(연세대)는 문제의 심각성과 함께 해결을 위한 경제 정책적 대안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먼저 홍 교수와 같은 설문결과 중 경제적 의미를 정리, 『소득 중에서도 「자산소득」이 불평등의 주범』이라고 밝혔다.
부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주는 지니계수로 비춰볼 경우 전체소득의 지니계수는 0.42인데 비해 자산소득의 지니계수는 0.97로 나타났다. 전체소득도 상당한 불평등 상대지만 자산소득은 최고수치인 1에 거의 근접해 극심한 불평등을 보여준다(0에 가까울수록 평등이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특히 부동산의 경우 가격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이나 GNP 증가율보다 월등히 높으며 서울에서 1.4%의 가구가 민유지 57.7%를 소유할 정도로 소유가 집중돼있어 엄청난 소득불균형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됐다. 김 교수는 이 같은 불평등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대안을 세 가지로 요약, 제안했다.
첫째는 지하경제의·양성화, 특히 사채시장의 소득불균형 효과가 심각하다. 높은 수익성을 보장해주는 금융상품 개발로 지하자금을 양성화해야 한다.
둘째는 지하경제와 관련된 정책으로 금융실명제와 조세구조합리화, 특히 자산소득에 대한 합리적 과세가 가장 중요하며 종합과세 제도가 조속히 실시돼야 한다.
셋째는 부동산을 잡기 위한 토지공개념제도. 정부는 88년 「부동산종합대책」을 수립, 토지공개념관련 제도를 일부 시행해 왔으나 지난해 지가상승률은 전국평균 20.6%나 되었다. 이제부터라도 명실상부한 토지공개념제도를 확실히 추진, 불평등만 아니라 과소비·근로의욕 감퇴·생산인력부족현상까지 해결해나가야 한다.
한편 이국영 교수(성균관대)는 정치학회 주최 국제학술회의에 제출한 논문 「한국민주화의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불평등 문제가 정치적 민주화와도 긴밀한 관계임을 주장한다.
이 교수는 『민주체제의 정착을 위해서는 과거의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남겨놓은 불평등문제의 청산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현재까지 해결되지 못하고있는 소득불평등구조가 민주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나아가 『불평등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민주화 과정마저 역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이 교수는 문제의 출발점을 「국가주도의 불균형산업화전략」에서 찾는다.
5·16이후 국가권력을 장악만 지배층은 대자본 소유자들과 후원·호혜관계 속에서 대기업 중심 불균형 산업화 전략을 취했다. 성장의 주력인 대기업은 대부분 수입 투자재와 기술에 의존, 성장함으로써 여타 국내생산부문의 성장을 동반하지 못했다.
그 결과 부의 집중이 심화되는 반면 국내수요는 늘어나지 못했고, 「저곡가-임금」 연계정책으로 농촌도 피폐해갔다. 또 산업부문의 불안정한 이윤율은 산업자본의 건전한 투자와 확대재생산보다 부동산 투기 등 탈자본화를 재촉했다.
결국 「소득증대→시장확대→기술진보→재생산」의 정상적 순환과정이 「주택가격· 임대료급등→노동력 재 생산비 인상→임금상승→기업이윤율압박→탈 자본화」라는 악순환이 되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이 같은 불평등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5공은 「복지국가」를 내세웠으나 정당성확보를 위한 슬로건에 불과했으며, 6공 역시 불평등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개혁을 추진했지만 본질적으로 개선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6공 출범 직전 「민주화화합추진위원회」(민화위) 사회개혁분과에서 건의한 금융실명제실시·부동산투기근절·도농간 균형발전·노동 3권 보장·임금격차해소 등이 대부분 좌절되거나 부분적으로만 실시돼왔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끝으로 『경제는 선진국 수준이지만 정치는 후진국 수준이라고 풍자하지만 사실 정치와 경제는 결코 분리돼있지 않다』고 재강조하고 『국가주도의 불균등 산업화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으면 민주화과정마저 새로운 권위주의경향에 의해 좌초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진보적 세력들에도『개혁을 위한 물질적 토대는 충분히 갖춰져 있는 만큼 정치이념의 편협성을 탈피하고 의회민주주의를 통한 사회개혁에 힘써야한다』고 조언했다. <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