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칼럼] 취업 차별 금지법 입법화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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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방대 출신자에게 대기업 취업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얼마 전 4대 대기업이 서울 소재 대학과 지방 대학에 대해 서열을 정해 차별 선발해 왔다고 발표했다. 한 인터넷 취업사이트가 지방대 4학년 재학생 및 졸업한 취업 준비생 1천8백54명에게 '지방대 출신이어서 구직 활동에서 불이익이나 차별받은 적 있느냐'고 물으니 79%(1천4백65명)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수도권 5백47개 회사 인사담당자의 64.7%가 신입사원 채용 때 서울과 지방대학을 구분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단지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대기업의 서류전형부터 응시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헌법상 직업 및 직장 선택의 자유에도 위배된다. 특히 이는 노무현 정부의 12대 국정 과제 중 하나인 '학벌 타파와 학력 차별금지' 약속과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대학의 경쟁 풍토 정착에도 중대한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능력이나 자질과 무관하게 지방대 출신을 배척하고 무조건 서울.수도권 대학 출신자를 선호하는 현상은 같은 대학 출신 공무원 등 주요 인사들과 서로 편의를 봐줄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학벌.간판 위주의 고용 구조는 입시 위주의 사회풍토를 더욱 조장하고, 학생에게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을 하기보다 점수 따는 기계로 만든다. 인격적인 수양보다는 개인주의적인 속성을 강화시켜 인간성을 말살하는 요인을 제공하게 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청년들이 삶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희망을 상실했을 때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올곧게 이끌어갈 원동력 역시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솔선수범해 공직에 실력있는 지방대생을 등용하고 '지방대생 취업 차별 금지법'을 조속히 입법해야 한다. 기업도 출신 대학보다는 능력과 발전 가능성을 기준으로 선발하는 등 사원 선발 방법을 합리적으로 바꾸어야 옳다. 우리나라 4년제 대학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지방대의 발전 없이 서울.수도권의 발전은 물론 21세기 선진국으로의 도약의 꿈 역시 한낱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이윤배 조선대 교수 컴퓨터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