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뮤페라 '新실크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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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문화 인프라를 얘기할 때 서울 공연의 수입 일변도와 소프트웨어의 부족을 자주 들먹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방 시립예술단체가 오케스트라에 합창단.무용단까지 거느리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각 단체의 정기공연뿐 아니라 합동공연으로 오페라 또는 총체극.뮤지컬을 상연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난 20~22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상연된 뮤페라 '신(新)실크로드'(대본.연출 장수동, 작곡 김대성)는 대전 시립 예술단체들이 새 공연장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의기투합해 만든 작품이다. 게다가 1회성 이벤트 공연을 개작해 '재활용'하는 지혜도 본받을 만하다. 이 작품은 지난해 봄 신축공사가 한창이던 대전 문화예술의전당 야외마당에서 월드컵 문화 이벤트로 펼쳐졌던 가무극(歌舞劇) '실크로드'에 줄거리와 음악을 보강, '뮤지컬 오페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대전 한밭박물관의 학예연구사 김영주(김원정.성향제 분)가 주우관을 쓴 삼국인이 새겨진 '유마경변상도'를 찾아 중국 돈황 막고굴로 떠나면서 극은 시작된다. 서역 출장차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던 중국인 첸웨이아(박철호.강연중 분)는 사막에 불시착한 뒤 영주의 길잡이로 따라나섰다가 서로 사랑에 빠진다.

두 주인공이 등장할 때는 뮤지컬 형식으로 처리되지만 무대가 타임머신을 타고 '왕오천축국전'의 주인공 혜초의 얘기로 넘어가면서 작품은 전통음악의 영향을 받은 창작 오페라로 변신한다. 부여의 장터, 둔황 막고굴, 그리고 전쟁 후의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어지는 답사 여행은 영화 '인디애나 존스'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싹트는 두 주인공의 사랑이 드라마의 구심력으로 작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사막과 석굴, 부여 장터, 아프가니스탄의 폐허 등 실크로드를 오가며 펼쳐지는 장면들이 너무 많아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

'신실크로드'의 무게 중심으로 작용한 것은 세련된 관현악법을 구사한 작곡가 김대성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식 뮤지컬의 기본기를 외면하지 않았고 남녀 주인공이 부른 사랑의 주제가로 공연이 끝나고 객석을 떠나는 관객들에게 뭔가 흥얼거릴 수 있는 선율을 선사하는 데 성공했다. 수정과 개작을 거듭한다면 대전을 대표하는 창작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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