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느낌] 그만의 한방! 우디 앨런표 코믹 스릴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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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우디 앨런 출연:스칼릿 조핸슨, 우디 앨런, 휴 잭맨 장르:코믹 스릴러 등급:12세

20자 평:다시 돌아온 우디 앨런표 코미디. 뻔한 얘기라도 그만의 한 방을 내장한 우디 앨런의 힘.

우디 앨런은 우디 앨런이다. 어떤 얘기를 하든, 심지어 아주 뻔한 얘기를 하더라도 그만의 서명을 확실히 찍는다. 특유의 비틀기와 변칙이 있다. 그만의 한 방이다. 예전만큼 기민하지는 못하다 해도 여전히 흥미로운 감독이다. 한동안 평단은 "서부극이라도 억지로 시켜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게 닦달해야 한다"고 닦달해 댔지만 이 유쾌한 노장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하다. '매치 포인트'에 이어 선보인 농담 같은 영화 '스쿠프'로 또 한번 가볍게 유영할 태세다.

전작 '매치 포인트'는 새로운 우디 앨런의 출발을 알리는 영화였다. 오래된 장기인 코미디와 결별하고 사랑과 야망.배신을 소재로 진중한 치정극을 선보였다. 골수 뉴요커인 그가 맨해튼을 떠났고 런던에서 3편을 찍겠다고 선언했다. 배우도 스칼릿 조핸슨, 조너선 뤼스 마이어스 같은 꽃미남 미녀를 골랐다. 의외의 변신은 성공이었다. 시장은 환호했고 평단도 꼬리를 내렸다.

'스쿠프'는 두 번째 런던 영화다. 새로운 우디 앨런('매치 포인트')과 익숙한 우디 앨런의 중간쯤에 있다. '매치 포인트'때 "그녀를 주셨으니 더 이상 신에게 불평할 수 없다"고 극찬했던 스칼릿 조핸슨이 다시 낙점됐다. 연쇄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이지만 긴장감보다는 소동이 부각되는 코믹스릴러다. 저승길에 특종을 잡은 민완기자의 유령이 이를 제보한다는 설정부터가 기발하다.

미국의 기자지망생 산드라(스칼릿 조핸슨)는 방학 중 런던의 친구 집에 머문다. 유명 배우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무작정 호텔방으로 찾아가지만 술을 거절 못하고 섹스만 하고 돌아오는 풋내기다. 어느날 마술사 시드니(우디 앨런)의 쇼에 참가자로 뽑혀 마술상자 안에 들어간 그녀는 스타기자 조의 유령을 만난다. 저승 가는 배에서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알게 된 조의 유령이 이 사실을 제보하러 온 것이다. 산드라는 특종의 꿈에 부풀어, 범인으로 지목된 젊은 백만장자 피터(휴 잭맨)에게 접근한다. 산드라는 시드니와 함께 미국의 갑부 부녀 행세를 하는데, 더없이 친절하고 잘생긴 피터와 사랑에 빠져 버린다.

'엑스 맨'의 분장을 지워버린 휴 잭맨이 매끈한 미남자의 매력을 발산한다. 그러나 역시 영화의 재미는 스칼릿 조핸슨과 우디 앨런의 콤비 플레이. 우디 앨런의 새로운 페르소나 스칼릿 조핸슨은 평소의 팽팽한 관능미를 덜어내고 털털하고 어수룩한 모습을 선보인다. 덕분에 영화가 훨씬 가볍고 밝아졌다. "유대교였지만 나이 들면서 나르시시즘으로 개종했다" "고뇌가 두뇌 에어로빅이라 1g도 살이 안 찐다"는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는 수다쟁이 우디 앨런은 그 자신이 명감독 이전에 명배우임을 입증한다.

우디 앨런이 종적을 감추는 결말 부분에는 허를 찌르는 묘미가 있다. 이 또한 우디 앨런의 선명한 날인이다. '매치 포인트'에서 호흡을 맞췄던 레미 아데파라신의 유연한 카메라가 런던과 영국 상류사회의 구석구석을 훑는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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