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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생일 선물-차순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어머니, 생신을 축하해요.』 막 식사를 하는데 아직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아들 녀석의 전화가 걸려 왔다.
지방대학을 다니는 딸아이는 MT를 간다고 예쁘게 싼 선물을 주며 아침 일찍 안동행 열차를 타러 갔다.
『여보, 오늘 저녁은 내가 살터니 뭐 좀 좋은 것 생각해 둬요.』
출근하는 남편이 대문을 나서면서 내게 한 말이었다.
가족이 다 나가고 혼자 거울 앞에 앉았다. 주름진 얼굴을 보며 「벌써 내가 마흔 여덟 번째 생일을 맞았구나」 생각하니 세월의 덧없음을 새삼 느꼈다. 그 동안 아이들 공부 뒷바라지하느라 하고 싶은 것 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다.
물려받은 재산 없이 남편의 봉급으로 살아온 결혼 생활 22년. 그래도 자식들이 내 속 안 태우고 남편이 크게 애 안 먹이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살아오고 있다.
저녁 퇴근 무렵에 전화가 왔다. 늦게 나가면 혹 걱정할까봐 서둘러 약속한 다방으로 갔다. 그런데도 벌써 남편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남편의 깍듯한 매너가 아내인 내게 돋보였다.
남편은 새로 생긴 호텔 뷔페를 여러 차례 권했지만 나의 고집에 결국 가까운 식당에 가 궁중 전골을 특식으로 청했다.
남편이 속주머니에서 슬그머니 선물을 꺼냈다. 풀어보니 목걸이와 팔찌였다. 18 금에다 큐빅을 박은 것이었지만 내심 깜짝 놀랐다.
결혼 당시 황금으로 받은 대부분의 패물은 오랫동안 앓으시던 친정 아버지와 시어머니 입원비에 팔아 보탰다. 「여유가 생기면 더 좋은 것으로 해야지」하며 마음속으로 벼르기만 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이사한 여동생 집에 갔다가 반지 하나를 받아온 것을 보고 빈정거리듯 한 남편의 말은 이랬다. 『이 세상의 돌을 모두 황금이나 다이아몬드로 생각하고 살아….』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나에게로 향한 남편의 미안함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던 최영 장군의 이야기를 남편은 우리 가족들에게 자주 얘기한다. 한때는 신경질이 났지만 요즈음은 으레 그러려니 한다. 또 싫게 들리지 않는다.
나는 오늘 사파이어·다이아몬드로 만든 값비싼 목걸이나 팔찌를 받은 것 못지 않은 기쁨을 느꼈다.
남편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어느새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경북 영주시 하망 2동 390의 36통2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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