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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지배하는 G7회담/배명복 파리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돈은 곧 힘」이라는 시정의 통념은 국제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일까.
지난 15일부터 사흘간 런던에서 열린 서방선진7개국(G7)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줄곧 되새겨본 질문이다.
이들 경제강국에서 온 기자들은 G7정상회담에서 국제질서가 논의되고,군축문제가 등장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는지도 모르지만 그밖의 다른 나라에서 온 기자들 가운데는 이 점에 왠지 모를 저항감 같은 것을 느낀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듯싶다.
G7정상회담은 당초 파리교외의 고성인 랑부예성에서 선진공업국 지도자들간의 노변정담으로 출발했다. 국제경제의 주역들끼리 한자리에 모여 세계경제의 현안에 대해 진솔한 의견을 나눠보자는게 당초의 취지였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정치문제가 논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고,회의가 끝나면 경제선언과 함께 정치선언을 채택하는게 관례처럼 굳어졌다. 17번째가 되는 이번 런던회담에서는 한걸음 더나아가 군축선언까지 채택됐다. G7내부에서조차 이런식으로 나가면 G7이 아예 정치기구로 탈바꿈하는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갖은 우여곡절을 무릅쓰고 런던까지 날아와 G7정상들과 만난 것도 바로 이들이 가진 돈때문이라고 할때 국제사회에서 경제력이 갖는 현실적 위력을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 곧 힘은 아니며,힘이 곧 정의인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돈이 있으니까 힘이 있고,힘이 있으니까 뭐든지 할 수 있으며,또 그것은 옳은 것이라는 인식은 개인들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국가들간에도 매우 위험하다.
G7정상들이 부부동반으로 버킹엄궁에서 여왕이 베푼 황홀한 음악잔치에 빠져 있을때 반겨주는 사람도 없이 쓸쓸히 히드로공항에 내리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모습에서 돈이 지배하는 국제질서의 한 단면을 보는듯 했다. 버킹엄궁 밤하늘에 울려퍼지던 요란한 폭죽소리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귀에는 「돈,돈」소리로,그밖의 다른나라 정상들의 귀에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라면 좀 지나친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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