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특혜/「심증」질의에 궁색한 답변/겉도는 국회상임위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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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그동안의 의혹 「정리성」 추궁/질의/추가대출 채권확보 자구책/답변
18일 국회재무위는 며칠간 뜸들였던 한보 금융특혜문제를 집중 추궁했으나 예상대로 의문을 풀지못했다.
야당의원들은 지난 6월말 정태수 회장의 석방을 전후해 벌어진 ▲1백67억원의 무담보 신규대출 ▲채권확보용 가압류금 1백7억원의 해제조치를 「한보살리기 각본에 의한 전례없는 혜택」이라고 공격했으나 재무부와 은행감독원이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부인해 평행선만 그었다.
국세청에 대해선 한보 세무조사의 늑장이유를 특혜의 연장선상에서 따졌으나 역시 소득을 얻지 못했다.
신민당이 제의한 진상조사소위구성문제를 둘러싼 여야간 대립으로 재무위는 이틀간 공전끝에 이날 정식으로 특혜시비를 추적했지만 국회추궁의 한계를 노출한채 그동안 나돌았던 각종 의혹을 종합적으로 제기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문제의 금융지원금은 한보의 수서주택조합원들에 대한 위약금 해결용으로 위약보상금 4백51억원의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조흥은행이 가압류 딱지를 붙여놓은 1백7억원(한보가 서울시에 낸 선수금)을 풀어주고 ▲조흥·서울신탁·산업·상업은행등 채권은행 공동으로 1백67억원을 무담보로 꿔준 과정에서 정치적 외압이 있었는지를 먼저 따졌다.
허만기·유인학(이상 신민) 김정길(민주) 최운지·김덕룡(민자)의원은 한보의 금융특혜를 5공 시절의 부실기업특혜와 동일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추궁했고 다수의원들은 『산은등 채권은행이 격렬히 반대했음에도 은행감독원 직권으로 무담보신용대출을 해준 배경을 대라』고 요구했다.
야당의원들은 6공 최대의 비리인 수서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비자금의 행방 등에 대해 구속중의 정회장이 입을 다문 대가로 이같은 특혜가 반대급부로 주어진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황창기 은행감독원장은 주택조합과의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면 ▲한보주택 연대보증회사인 한보철강이 도산할 경우 은행의 부실채권이 격증하고 ▲주택조합원 집단민원이 야기되고 ▲관련수급업체(4백개)의 연쇄도산이 우려돼 이같은 지원이 이뤄졌으며 「어디까지나 은행의 자율적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황원장은 『부실채권으로 은행경영이 어렵게 되는 것을 막는게 감독원의 의무』라며 『은행간의 지원문제에 이견이 있어 여신에다 담보를 합한 기준을 제시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창구 지도」고 조정기능』이라며 압력은 아니라고 되풀이 부정했다.
김정길 의원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에 엄청난 특혜를 베푸는 것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하자 황감독원장은 『도덕적으로 마땅치 않은 것이 있겠으나 그것은 법원에서 판단할 일이며 은행은 대출금을 회수하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맞섰다.
『한보로부터 채권을 돌려받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도 없이 조흥은행이 가압류를 해제한 것이 업무상 배임이 아니냐』는 홍영기·이경재(이상 신민)의원의 추궁에도 황원장은 『가압류의 실익이 없어 풀었다』고 해명했다.
이용만 재무장관은 『가압류해제는 채권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객관적 임무위반행위나 범의가 인정되기 어려워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게 법무부의견』이라고 법의 불명확성을 이용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새로운 의혹으로 등장하고 있는 정회장의 한보철강주식 63만주(시가 42억원)은닉재산에 대해 황원장은 은닉과정에 대한 구체적 설명없이 『채권은행단의 재산조사과정에서 확인된 것으로 주식실물을 인도토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야당의원들은 한보의 문제점을 들어 제3자인수를 촉구했으나 이재무장관은 『한보의 자구노력,경영진의 경영능력,회사의 갱생가능성을 감안해 검토할일』이라고 원칙적 답변.
황감독원장은 『채권은행단이 제3자인수 문제로 회의를 개최했다는 설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이장관은 한보장래문제에 대해 원론적자세를 보인 것은 국회가 열리는 동안 이 문제가 결정되면 새로운 의혹과 시비를 낳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으나 정부측 답변은 석연치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임춘원의원(신민)등이 세무조사의 미지근함을 따지고 한보의 추징세액 규모를 물은데 대해 서영택 국세청장의 답변자세가 그점을 잘 방증했다.
서청장은 『일반적으로 법인에 대한 조사는 대상의 난이도와 함께,너무 급작스럽게 조사를 끝내다보니 소송에 지는 경우가 많아 착실한 조사를 할 필요가 있어 조사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궁색한 답변을 했다. 수서사건이 터진지 3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여태껏 주변조사만 하고 있다는 서청장의 답변은 우리 세무당국의 관행으로는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세금을 거둬들이는데 지장이 없느냐』는 물음에 서청장은 『한보주택 및 정회장과 아들 소유부동산에 대해 압류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주식에 대한 추가압류는 필요없다』며 조세채권확보에 이상없음을 설명했다.
이날 회의는 시중에 나돈 의혹설의 실체를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채 끝나 현재로선 한보의혹의 「제2막」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특혜문제는 심증단계의 시비거리에서 주춤할 수 밖에 없는 상태다.
국정조사권을 가진 진상조사소위가 조성되면 추궁의 강도를 훨씬 높일 수 있겠으나 야당도 미지근하고 민자당은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어 한보사태는 의혹속에 묻힐 전망이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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