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국영기업에 일 자본 허용-프랑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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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유럽국가들 가운데 일본의 대 유럽공동체(EC)경제침략에 가장 경계의 목소리를 높여온 프랑스가 국영전략산업에 대해 일본기업의 직접자본참여를 허용,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프랑스정부는 프랑스 최대의 국영기업 가운데 하나인 뷜사(컴퓨터 및 정보기기 메이커)가 신청한 일본의 NEC(일본뇌기)사와의 자본제휴협정을 10일 정식승인 했다. 대형 컴퓨터분야에서 미국 IBM과 쌍벽 이루는 NEC는 이로써 뵐사 지분의 4·7%를 손에 넣게되면서 프랑스국영기업에 직접 출자하게된 최초의 일본기업으로 등장하게 됐다.
프랑스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이곳 언론들에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5월 프랑스 최초의 여자재상이 된 에디 크레솔 총리는 일본경계론을 입버릇처럼 얘기해왔다. 심지어 일본을 적으로까지 매도하면서 무차별적인 일본의 대 EC경제공략에 대한 방비를 늦추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해왔다.
뷜사의 NEC와의 자본제휴문제는 전임 로카르 총리 때부터 계류돼온 문제였다. 그러나 크레송 여사로 총리가 바뀌면서 일단 이 문제는 물건너갔다는 게 프랑스경제계의 지배적 분위기였다. 일반적 예상을 깨고 두달여에 걸친 고심 끝에 크레송 정부가 결국 「적」과 손을 잡기로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식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프랑스언론들은 「일본은 밉지만 그 기술은 아쉽다」고 지적하면서 크레송 총리의 이번 결정은 일본의 기술적 우위를 인정한 불가피한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일본의 기술 앞에 프랑스가 무릎을 꿇고만 셈이다.
크레송 정부가 이러한 치욕적(?)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뷜사가 처해있는 위기를 들춰보면 자명해진다.
독일의 지멘스, 영국의 ICL과 함께 유럽 컴퓨터산업의 트로이카를 이루고 있는 뷜은 지난해 68억 프랑(약8천2백억원) 이라는 사상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세계컴퓨터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탓도 있지만 후지쓰(부사통)·NEC·도시바 (동지) · 히타치(일립)등 일본컴퓨터업계의 무차별적 시장공략 때문이라는게 뷜측의 변명이었다.
컴퓨터산업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략산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뷜사는 앞으로 94년까지 총1백40억 프랑(약1조7천억원) 규모의 막대한 자금지원을 정부에 요청하는 한편 전면적인 경영쇄신 계획을 제시했다.
그중 하나로 제시된 게 NEC와의 자본협력으로 NEC에 소폭의 자본참여를 허용하는 대신, 뵐이 기술적으로 열세에 있는 대형컴퓨터분야에서의 협력체제를 구축한다는 것. 즉 대형컴퓨터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을 NEC가 뵐에 공급하고 뷜은 이를 제품화해 세계시장에 판매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일본 최대의 컴퓨터메이커인 후지쓰는 영 국ICL주식의 80%를 매입, ICL을 인수했다. 이어 지난 5월에는 영국의 퍼스널컴퓨터메이커인 아프리코트가 일본의 마쓰시타에 넘어갔다.
NEC의 이번 뷜사 출자가 비록 4·7%에 그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일본을 적대시하고 있는 프랑스 국영기업이 안방까지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NEC의 뷜사 출자허용이 결정되던 날 아침, 프랑스의 우익 일간지 르 피가로가『우리도 노력하고, 일본 국민들처럼 국산품을 먼저 찾고, 우리도 강점이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때 우리도 일본처럼 성공할 수 있다』면서「일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유럽의 분위기를 잘 전해주고 있다. 【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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