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남자골프 '미국 안 부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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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남반구인 호주의 시드니는 지금 여름이다. 아직 뜨거운 바람이 분다. 29일 호주 시드니의 콩코드골프장에서는 2004년 미국 PGA 투어 포드 챔피언십 우승자인 크레이그 패리(41)가 땀을 흘리며 10대 초반의 두 아이를 가르치고 있었다. 한 아이는 그의 아들이지만 다른 아이는 동네에 사는 주니어 선수다. 그래도 패리가 두 아이에게 쏟는 열정은 비슷해 보인다. 아마추어 세계 1위였던 교포 이원준도 패리에게서 이런 도움을 받았다.

호주는 골프 강국이다. 카리 웹 등 뛰어난 여자 선수도 배출했지만 특히 남자 골프에서 강하다. 호주 남자 선수들은 지난해 US오픈을 포함, 미국 PGA 투어에서 8승을 거뒀다. 유러피언 투어와 아시안 투어, 일본 투어, 한국 투어(지산 오픈.마크 레시먼) 등 전 세계 골프 투어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현재 세계 골프는 남호여한(男濠女韓)이라고 부를 만하다.

남자 세계 랭킹 100위 이내의 호주 선수는 애덤 스콧(3위) 등 11명이다. 100위 이내에 26명이 포진한 여자 골프의 강국 한국보다는 적지만 단순 비교는 무리다. 남자 투어는 미국세가 워낙 강하고 여자 투어보다 경쟁이 심하다. 게다가 호주는 인구가 2000만 명에 불과하다. 호주 출신 선수들은 수는 적지만 강한 정예부대다.

호주는 골프 하기에 좋다. 적도 가까운 북쪽 지방을 제외하고 사계절 골프가 가능하다. 시드니와 멜버른.골드코스트.퍼스 등 호주 전역에 명코스들이 널려 있고 훌륭한 선수들이 고루 배출됐다. 1950~60년대 브리티시오픈을 다섯 차례 석권한 피터 톰슨과 그레그 노먼 등 세계 '넘버원'을 여럿 배출했다. 호주에는 최경주의 스윙 코치인 스티브 밴을 비롯한 뛰어난 코치도 많다.

가장 큰 경쟁력은 멘토 시스템이다. 카리 웹, 닉 오헌, 피터 오말리 등 호주 출신 프로골퍼들의 에이전트인 토니 부풀러는 "그레그 노먼은 애덤 스콧과 카리 웹을 집으로 불러 함께 생활하면서 골프의 기술과 투어의 기술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스콧은 지금도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노먼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한다. 스튜어트 애플비 등 대선수도 모국의 주니어 선수가 함께 연습하고 싶다고 하면 흔쾌히 동의한다.

선수들은 애국심이 강하다. 미국과 유럽투어에서 활동했으며 ANZ 레이디스 마스터스를 주최하는 밥 튜이는 "호주 선수들은 해외에서 잘 뭉쳐 서로 돕고 호주 오픈 같은 자국의 내셔널 타이틀 대회에는 대부분 참가한다"고 말했다.

한국 오픈이나 한국 여자 오픈에 미국에 간 한국 선수들이 엄청난 출전료를 요구하면서 거의 오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역사가 짧은 남반구에 사는 호주인들은 10대 후반이 되면 북반구로의 여행을 필수라고 생각한다. 호주 골프 선수는 북반구 선수들에 비해 투어 유전자가 강하다. 물론 병역 문제도 없다.

시드니=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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