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보상금 타내자 '짝퉁 해녀' 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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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리. 온산공단과 고리원자력발전소 사이에 있는 267가구의 작은 마을이 '짝퉁 해녀'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신고리원전 1, 2호기 건설로 마을 앞바다에서 미역채취 등을 해온 해녀들에게 어업권 보상을 해주겠다고 하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해녀로 등록하는 바람에 '진짜 해녀'들이 보상액수가 줄어들까 속을 앓고 있는 것.

울주군에 따르면 원래 이 마을에서는 전업 20명에 부업 30여 명을 합쳐 50여 명이 해녀일을 해 왔다. 그런데 30일 현재 마을 앞 바다에서 물질을 한다며 해녀 등록증을 받은 사람은 모두 232명으로 늘었다. 가구당 해녀가 한 명꼴인 셈이다.

더구나 2005년 1월 신고리원전 건설이 확정되기 전까지 단 1명뿐이던 '남자 해녀'가 66명으로 급증했다. 대학생.회사원으로 추정되는 20대(12명), 30대(38명) 젊은이가 50명이나 새로 등록했고, 힘이 부쳐 물질이 힘들 것으로 보이는 75세 이상도 8명이나 됐다.

울주군 관계자는 "2005년 1월 이후 지금까지 해녀 등록자가 162명이고, 이 가운데 80~90%는 고리원전 측이 부산 부경대에 보상금 산정 용역을 맡긴 지난해 3월 집중적으로 등록했다"며 "이들 대부분이 보상금을 노린 짝퉁 해녀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여종 신리어촌계장은 "한 집에서 부부자녀 4명이 해녀등록을 한 경우도 있고 잠수는커녕 물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학생.회사원.노약자.장애인은 물론 외지에 시집간 딸까지 위장전입을 시켜 등록한 집도 많다"고 말했다.

짝퉁 해녀가 갑자기 늘어난 것은 현행 수산업법상의 맹점 때문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일반 어업이나 양식업의 경우 어선.양식장이 있어야 어업권이 인정되지만 해녀는 등록증만 있으면 보상 대상이 되는 데다 해녀가 되는 데 자격이나 제한 요건이 없어 누구든 신고만 하면 등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얼마의 보상을 받을지는 이들의 일터인 신리 앞바다 공동어장의 가치에 대한 부경대의 감정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인근 비학리 주민들이 2001~2005년 사이 받은 보상액 수준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비학리의 경우 생산실적을 높이 평가받은 해녀는 수천만원에서 최고 1억2000만원까지 보상받았고, 등록증만 갖고 실적이 입증되지 않은 사람에겐 400만~500여만원씩 보상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고리원전 측은 "보상금 총액에 대한 감정용역결과가 나오면 그 범위 내에서 개별주민들과 보상협의에 들어갈 것"이라며 해녀수가 많으면 개인별 보상 액수가 줄어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신리어촌계 해녀회 배임이(51) 회장도 "진짜 해녀에게 돌아갈 보상금이 줄어들게 뻔하지만 앞뒷집에서 서로 얼굴을 빤히 알고 지내는 처지여서 드러내 놓고 우리만 보상받겠다고 큰 소리 치기도 어려워 속만 끓이고 있다"며 한숨지었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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