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초 3체급 석권이 꿈|4방 앞둔 WBCS 플라이급 챔프 문성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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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파나마의 어네스토 포드를 상대로 한 WBC슈퍼플라이급타이틀 4차 방어전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도 체육관 앞에서 마주친 어느 팬이 『문 선수! 제발 맞지 좀 말고 한방에 끝내 버려. 이번에도 꼭 응원 갈테니까』라고 한말이 귀에 생생하다.
그 앞에선 『예! 고맙습니다』고 말했지만 스스로 생각할 때 성격상 아웃복싱은 체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또 실제로도 링에 오르면 내가 맞는다는 사실을 전혀 개의치 않게 된다.
그 팬도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많이 맞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쉬지 않고 밀어붙이는 나의 저돌적인 경기스타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팬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목포 덕인고에 진학하면서 손에 잡기 시작한 글러브.
복싱인생13년동안 몸에 밴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질 수 있을까.
나는 대전상대가 정해지고 일정이 잡힐 때마다 내생애 가장 환희를 맞 본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을 기억해내려 애를 쓴다.
82년3월 목포대 입학식을 포기하고 출전한 킹스컵대회 결승에서 나를 무너뜨렸던 완차이 풍스리(태국) 와 6개월 후 뉴델리아시안게임 결승에서 또 만난 것이다.
풍스리와의 결승대결이 드러나면서부터 나를 사로잡은 불안감과 두러움 탓인지 1, 2라운드 내내 흠씬 얻어맞기만 했다. 그러나 3라운드에 들어 행운의 러키편치가 터져 풍스리를 캔버스에 뉘고 KO승을 거뒀을 때의 그 감격을 되새김하면서 승리의 최면을 걸고싶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러키 편치라는 게 단순히 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다짐한다.
나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
모든 일은 그 일을 위해 쏟아 부은 땀과 눈물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뉴델리아시안게임 이후 내가 복서라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다.
술·담배는 물론 복싱에 불필요한 모든 행동자체를 훈련이 시작되면 왼전히 끊는다. 대결할 날짜를 잡아놓고 불안과 초조감 속에서 술·담배를 멀리한다는 것은 보통의 인내로는 감내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심지어 집사람(김명숙)과 눈길이 마주치는 것조차 피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많다.
대신 아들 재광(5)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린다. 체육관에도 데리고 다닐 정도다.
내게 남은 앞으로2∼3년, 그 안에 꼭 세계주니어 페더급에 도전, 밴텀급·플라이급에 이어 한국최초로 3개 체급 석권을 해내고 싶다.
그리고 주니어페더급타이틀전은 미국 같은 「큰물」에 가서 해보고 싶다.
한때 내가 편치드렁크에 시달린다는 얘기들이 언론에 보도돼 나를 걱정해주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있다.
당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아무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상황이다.
어쨌든 모든 기우를 없애는 길은 링에서 화끈하게 승리하는 것뿐이다.
챔피언 문성길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은 그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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