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시대 지역문화에 ″찬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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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기초광역의회구성으로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를 맞으면서 지방시대를 꽃피울 가장 중요한 밑바탕인 지역문화가 오히려 위축될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방의회의원들의 문화에 대한 인식부족과 현시적인 사업성과에의 집착으로 빚어지자 「문화실조」가 이미 부천·안양·수원 등지의 기초의회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광역의회의 경우에도 그와 비슷한 궤적이 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어서 문화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지방문화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실태·정부의 대응방안·문화인의 의견 등을 정리한다. 【편집자주】
◇실태=부천시향은 현재 2관 편성으로 70명인 단원을 3관 편성인 90명으로 늘리기 위해 지난 5월 시의회에 조례 개정을 요청했었으나 오히려 교향악단의 폐지논의가 일어 문화계를 경악시켰다.
부천시향은 지방교향악단 중 활동이 가장 활발하며 서울공연에서도 호평을 받은바있고 고정회원수도 1천명이 넘는 대표적인 지역 문화단체다.
시향측은 시와 13억원 규모의 증원에 따른 예산규모에 합의, 조례개정에 나섰으나 시의회측은 도로공사 등이 투자에 우선해야한다며 격렬한 토론 등 진통을 겪은 뒤 표결로 어렵사리 조례를 개정했다.
수원시립합창단도 세계적인 합창제인 바흐페스티벌에 초청방았으나 시의회의 예산사용안 부결로 참가의 길이 막혀 딱한 실정이다.
92년 6월 미국오리건주립대학에서 개최되는 이 합창제는 참가 초청만 받아도 화제가 될만한 의미 있는 행사다.
합창단측은 1억원의 참가예산과 사전답사비용을 시의회에 요청했으나 예산부족을 이유로 부결됐다.
이에 수원지역문화인들은 모금을 통한 축제참가를 모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상임지휘자인 이상길씨(37)는 지난달 28일 자비로 출국, 사전답사를 벌이고 있다.
안양시립합창단은 지난달 서울오페라상설무대의 오페라 『팔리아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합창을 맡아 호평받은 단체.
이 합창단은 오페라 접촉기회가 없었던 지역주민을 위해 안양에서 공연키로 하고 이에 소요되는 최소예산(4천만원)을 시의회에 요청했으나 역시 예산부족을 이유로 지난달 부결됐다.
합창단측은 의상·세트 등은 오페라 상설무대측으로부터 무료대여까지 받아 3억원의 공연예산을 4천만원으로 축소했으나 이 같은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이 지역은 88년 안양문예회관이 건립되면서 공연장에는 필수적인 피아노 구입비로 1백50만원을 계상, 문화계를 놀라게 한바 있으며 소속공연단체에 TV수상기조차 구입해주지 않은 적이 있는 문화소외지역이기도 하다(일반 공연장의 연주용 피아노 가격은 보통 1억원 내외).
◇정부대처방안=문화부는 이같이 지자제실시 후 나타나는 각종 현상이 지역문화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나간다고 보고 우려하고 있다. 이어령 문화부장관은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지자체와 문화활성화의 관계, 후기산업사회에서 문화 역할 등의 내용 및 문화에 대한 이해 제고를 요청하는 뜻을 담아 편지를 보냈으나 이는 궁여지책일 뿐이다.
문화부는 8월부터 시작되는 지방시·도 예산 편성작업시 지방문화 사업비를 대폭 계상해 주도록 주무부서인 내무부에 협조 요청키로 했다.
문화부는 현재 전국1백66개 지방문화원에 매년 7백만원씩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며 지역대표 향토축제에 1백50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 문예회관건립시 정부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며 지방소재 문화재보수비 지원도 하고 있으나 금액이 적다.
간접적인 지역문화활성화 사업으로는 국립극장·국립국악원·국립현대미술관 등의 지방순회공연·전시를 지난해부터 실시, 지역주민들의 문화향유권 신장을 통해 붐을 조성하고 있다.
◇전문가의견 ▲탁계상씨(음악평론가)=지자제의 여러 가지 성공요인 중 문화부문의 성공이 주요 관건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지역문화가 활성화 되어야하고 중앙예술계와의 연계교환공연 등도 가능하도록 일반화 가능성 제고와 수준향상이 시급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 같은 조건들은 지방의회가 본격 가동되면 지방행정의 살림을 맡고있는 지방의회 의원들이 문화의 중요성 및 필요성을 얼마만큼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정적 현상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지방의회는 국회와는 다소 운영방법이 달라야한다. 도로건설·건축 등 가시적인 성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지역발전의 기틀마련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정덕용씨(문화부생활문화국장)=지역발전의 기틀로는 주민들의 화합·단결·애향심 및 동질성제고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활동이 제격이라고 본다.
따라서 문화부도 이를 위한 재정지원 및 제도적 장치마련에 업무의 중점을 두겠으며 이와 함께 지방의원 및 지방공무원, 지역주민 모두가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는데 마음을 열어야 할 것으로 진단된다. <김경희·김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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