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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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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의 물가가 왜 이렇게 비싸진 것일까. 임금이 너무 오른 탓이다, 기업이 폭리를 취하기 때문이다, 부동산값이 폭등해 그렇다…. 이런저런 설명은 많지만 딱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물론 고임금이 고물가의 배경이 됐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고임금을 고물가의 '단독 정범'으로 몰기엔 무리가 있다. 임금이 선진국 못지않게 높아졌다지만, 이는 고임금을 줘도 견딜 만한 몇몇 대기업에 국한된 얘기다. 임금에도 이미 양극화가 심해졌다. 최저임금만 보더라도 우리가 시간당 3480원인 데 비해 일본은 전국 평균이 673엔(약 5200원)이다. 이런 임금 차이가 있는데도 서울의 물가가 더 비싸다면 고임금 이외에 무엇인가 다른 이유가 더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값이 너무 뛰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그럴듯하긴 하다. 하지만 잘 따져보면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서울의 땅값이나 임대료가 비싸졌어도 아직 도쿄를 추월할 정도는 아니다. 엔화가 싸지는 바람에 엇비슷해진 경우가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여전히 도쿄가 비싼 편이다. 따라서 고물가의 책임을 몽땅 부동산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기업이 폭리를 취해 물가가 비싸다는 주장에도 의문이 든다. 일부 기업이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비싼 값을 매기거나 수입업자들이 마케팅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고가 판매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경쟁이 심하다고 봐야 한다. 돈 냄새 나는 곳엔 너도나도 뛰어들어 금방 '레드 오션'으로 만들고 마는 게 한국의 풍토 아닌가.

그렇다고 공급 부족으로 일어난 현상도 아니다. 일부 아파트나 골프장을 빼면, 넘치면 넘쳤지 모자라는 형편이 아니다. 또 무거운 세금 탓에 비싼 것은 주유소 기름이나 몇몇 특소세 부과 품목 정도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2.2%)이 7년 만에 최저라고 하니 살인적 인플레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쯤 되면 고물가의 '범인'을 특정 짓기 곤란해진다. 주요 요소비용의 절대 수준이 선진국보다 비싸지 않은데도 최종 산물의 값이 비싼 것은 투입(input)-산출(output)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론 우리 경제의 효율이 나빠진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효율이 낮아 비용이 더 들고, 이것이 가격에 반영된 뒤 그대로 유지되는 '고원(高原) 물가'가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마치 연비가 나쁜 자동차처럼 기름은 많이 먹으면서 얼마 못 달리는 꼴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몇 년 전부터 일본에 가면서 공항 면세점에서 양주를 사들고 갈 필요가 없어졌다. 일본 할인점의 양주값이 더 싸기 때문이다. 엔화나 일본의 관세가 떨어져서가 아니다. 일본 유통업체들이 구조조정으로 관세를 상쇄할 만큼 코스트를 줄이는 데 성공한 덕이다. 효율을 높인 결과다.

이에 비해 우리 경제의 효율을 해치는 변수는 한두 개가 아니다. 근로자들의 느슨한 근로의식, 내 돈 회사 돈 구별 없는 오너의 전근대적 경영, 복잡한 유통구조, 내 밥그릇 지키려는 기득권 의식, 기업을 옥죄는 규제와 부정부패, 뒤틀린 자원 분배, 잘못된 정책 우선순위, 그리고 정국 불안과 정책 실패….

시장경제는 누가 혼자 총대 메고 이끌고 나가는 게 아니다. 참여자 모두가 나름의 역할을 하는 가운데 전체가 굴러가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비정상적인 고물가도 누구 탓을 할 수 없는 일이다. 각 경제주체가 저마다 책임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공동의 책임의식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고물가 해소의 첫걸음이다.

남윤호 경제부문 차장